
SK하이닉스가 일본 도시바메모리 인수 2차 입찰에도 뛰어들었다. 한국, 일본, 미국, 대만 등 각국 기업이 연합 또는 단독 입찰하면서 인수전이 복잡한 구도로 전개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위한 2차 입찰에 참여했다. SK하이닉스는 입찰 금액 등 사안은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국내외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과 함께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베인캐피털이 도시바와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경영진이 참가할 수 있는 경영자매수(MBO) 방식의 인수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베인캐피털이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 도시바메모리의 주식 51% 이상을 취득하게 된다. SK하이닉스는 SPC 설립을 위한 자금을 제공한다. 나머지 도시바메모리 지분은 도시바 등이 보유, 한-미-일 연합을 형성하겠다는 것이 베인캐피털의 구상이다. 베인캐피털은 이를 위해 일본 정부 후원을 받는 관·민 펀드인 일본산업혁신기구(INCJ)에도 출자를 타진했다.
이렇게 되면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긍정 효과가 기대된다. SK하이닉스가 전면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인수 시 각국의 독점 금지법에 발목을 잡힐 우려가 적다. 일본 관·민 펀드가 참여해 연결고리를 맺게 되면 현지 정부나 여론의 지지도 받을 수 있다.
베인캐피털과 SK하이닉스가 제시한 인수액은 1조여억엔으로 도시바 본사가 원하는 2조엔(약 20조원)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인캐피털은 SK하이닉스와 협업하면 도시바메모리 경쟁력을 지속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도시바 채권단에도 매력 넘치는 제안이다.
다른 잠재적 인수자와 관련해선 전망이 엇갈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의 또 다른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도 INCJ에 비슷한 출자를 제안했지만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19일 KKR 제안에 INCJ가 응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의 사실 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KKR 외에도 브로드컴이 2차 입찰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도시바와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을 공동 운용하고 있는 웨스턴디지털의 향후 행보는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지난 15일 합작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매각 작업은 용납할 수 없다며 국제상업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했다. 중재가 나오기까지는 보통 1년 6개월이 걸린다. 중재 결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도시바가 목표로 삼는 내년 3월까지 매각은 이뤄질 수 없다.
아사히신문은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조만간 재협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웨스턴디지털 역시 도시바 본사의 재정 건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에 치명타를 받을 수 있다. 베인캐피털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 웨스턴디지털과의 협의 채널도 열어 뒀다. 일각에서는 도시바메모리에 베인캐피털, SK하이닉스, KKR, INCJ, 웨스턴디지털 모두가 출자하는 거대 연합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혼자 못 가지면 나눠서라도 가지겠다는 '상호 견제' 심리가 작용할 것이라는 논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시바는 2차 입찰에서 만족할 만한 조건이 나오지 않으면 기한을 연기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산케이신문은 “2차 입찰에서 2개 진영 정도로 압축하고 6월 3차 입찰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해 관계자의 입장이 모두 달라 인수전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면서 “중요한 건 일본 정부의 의지로, 관·민 펀드가 어디에 힘을 실어줄 지가 가장 큰 변수”라며 예의 주시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