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부품 시장을 뒤흔들 삼성발 2차 태풍이 온다. 삼성전자가 내년 상반기 출시 예정의 전략 스마트폰에 터치 일체형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데 이어 메인 기판으로 'SLP(Substrate Like PCB)'를 탑재하기로 했다. SLP는 반도체 패키지 기술이 접목된 차세대 기판으로, 삼성전자가 SLP를 도입하긴 처음이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의 이번 결정으로 부품업계 전반에 메가톤급 파장이 예상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에 출시하는 갤럭시S9부터 SLP를 채택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낸드플래시, D램 등 스마트폰 핵심 부품들을 연결하는 메인 기판으로 SLP를 쓰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SLP 수급을 위해 이미 삼성전기 등 복수의 한국 인쇄회로기판(PCB) 업체와 생산 준비에 착수했다. 해당 기업은 생산 설비를 들이고 있다. 한 PCB 업체 관계자는 “삼성의 차기 스마트폰을 타깃으로 SLP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SLP는 차세대 스마트폰용 메인 기판이다. 현재 주류인 고밀도다층기판(HDI)이 발전한 형태다. HDI에 반도체 패키지 기술을 접목, 면적과 폭을 줄이면서 층수를 높여 효율성을 배가시킨 것이 특징이다.
최근 스마트폰은 공간 활용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배터리 용량을 늘려서 스마트폰을 오래 쓸 수 있게 하면서도 여러 고성능 부품을 탑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배터리 대형화와 기판 소형화가 동시에 구현돼야 하는데 SLP가 이 두 요건을 충족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플도 이 같은 장점으로 올 가을 출시 예정인 신형 아이폰에 SLP 채택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이끄는 애플과 삼성전자가 SLP로 전환하면서 스마트폰 메인 기판 업계는 대격변을 맞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발 후폭풍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권성률 동부증권 연구원은 “SLP는 반도체 패키지 기술인 MSAP 공법을 활용한다”면서 “이 때문에 기술을 확보한 삼성전기와 같은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패키지 기술이 없는 곳은 앞으로 도태될 수 있다는 뜻으로, 삼성 SLP 채택으로 후방 산업계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실제로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HDI를 공급하는 업체는 1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SLP 생산 준비에는 4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술 진입 장벽이 대체로 높기 때문으로, 양산·공급이 본격 시작되면 해당 업체 간 희비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자사 AP '엑시노스'를 사용한 갤럭시S9 모델부터 SLP를 쓸 계획으로 알려졌다. 기술 차이가 있어 퀄컴 AP 사용 모델에는 HDI가 적용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흐름상 SLP는 초기 도입 단계가 지나면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연간 4억대를 판매하는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사다. 이 회사의 신기술 도입과 전략 변화는 기존 시장 구도를 완전히 뒤집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 때문에 터치스크린 업계 또한 풍전등화 처지에 놓였다. 갤럭시S9 전 모델에 터치 일체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일명 와이옥타로 불리는 이 디스플레이는 터치스크린패널(TSP)이 필요 없다. 그동안 외부에서 조달하던 삼성전자의 TSP 수요가 사라지면서 관련 부품·소재 시장의 축소가 예고된다. 이 같은 파장이 이제는 PCB 업계로까지 번지게 됐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