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5000억원대 초대형 반도체 연구개발(R&D) 국책 과제가 시작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차세대 반도체 산업을 선점, 반도체 강국의 입지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2조5000억원 규모의 범부처 반도체 연구R&D 국책 과제를 기획하고 있다. 계획 기간은 10년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자부품연구원(KETI),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반도체 분야 박사들과 국내 각 대학 교수 50여명이 올해 초부터 새로운 국책 과제 기획 작업에 참여했다.
과기정통부와 산업부는 9월 공청회를 거친 뒤 기획재정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할 계획이다. 예타 조사는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의 경제성을 사전 검토하는 제도다. 도로, 항만, 철도 등 국토 개발 분야를 제외하면 2조원을 웃도는 R&D 국책 과제가 시도되는 것은 드물다.
이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출연연 관계자는 “반도체는 대한민국 수출 1위 품목으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대표 산업”이라면서 “중국 등 경쟁국 추격을 따돌리려면 과감한 R&D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계 부처는 올해 예타 조사가 통과되면 내년 하반기부터 국책 과제가 수행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에 기획한 초대형 반도체 국책 과제는 크게 △인공지능(AI) 분야 △사물인터넷(IoT) 분야 △차세대 반도체 생산 관련 장비, 재료 분야로 분류된다. 원천 기술 개발과 상용화 기술 개발 두 가지 모두를 아우른다. 원천 기술은 과기정통부, 상용화 기술은 산업부가 각각 관장한다.
원천 기술 분야에선 AI 구현을 위한 이른바 '초저전력' 반도체 소자 기술 개발이 포함됐다. 실제 AI 기술이 우리 실생활에 제대로 활용되려면 지금보다 전력 소모량을 1000분의 1 수준까지 낮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반도체 소자 기술의 근간인 상보성금속산화물반도체(CMOS)를 대체할 만한 차세대 소자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멀티밸류' 소자 기술 등이 후보 기술로 물망에 올랐다. CMOS는 0과 1로 계산을 수행하지만 멀티밸류는 -2, -1, 0, 1, 2 등 다양한 값으로 논리 연산이 가능한 차세대 소자 기술이다. 빅데이터 연산에 최적화된 더욱 빠른 속도의 비휘발성 메모리 기술과 소비자 기기에 탑재될 수 있는 AI 칩 개발도 과제 후보군으로 올라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IoT 분야에선 경량, 소형 칩 개발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IoT 구현을 위한 지능형 소프트웨어(SW)와 시스템 분야의 토털 솔루션 개발 등이 과제 후보군이다. 장비 분야에선 이 같은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다채로운 기술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IoT와 장비 분야에선 원천 기술과 상용화 기술 개발 과제가 골고루 분포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책 과제는 주력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차세대 기술을 개발, 시장을 선점함과 동시에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고급 인력을 양성한다는 취지도 있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지난 정권에서 반도체 분야 정부 R&D 투자액이 크게 줄어든 탓에 현재 산업계는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면서 “국책 과제로 경험을 쌓은 학부, 석·박사 과정 학생이 많아지면 그 자체로도 인력 수급 불균형을 크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