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퇴진을 선언하면서 후임 인선과 향후 조직개편 방향에 관심이 쏠렸다. 이건희 회장 와병과 이재용 부회장 구속 등으로 인한 총수 부재 상황에서 삼성전자를 이끌어 온 권 부회장 후임이 누가 될지가 최대 관심사다. 지난해 사장단 인사를 미뤘던 상황까지 더해져 후속 인사 폭이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13일 권오현 부회장이 부품부문 사업 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하고, 겸직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에서도 물러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와 의장직은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나 HP 같은 글로벌 기업을 보면 최고경영자(CEO)가 임기 만료 전에 퇴진 의사를 밝혀왔다”면서 “이들 글로벌 기업처럼 권 부회장도 본인 거취를 미리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5년째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서 삼성을 이끌어왔다. 이미 총수 부재로 리더십 공백이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권 부회장 후임을 즉각 선정해 공백을 최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권 부회장과 함께 IT·모바일 부문과 소비자가전 부문이 각자 대표를 맡는 3각 체제다. 권 부회장 후임으로 부품부문 대표를 선임하고, 기존처럼 3각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고 실적을 낸 권 부회장이 과감히 물러나면서 다른 사장들과 계열사 CEO들이 인적 쇄신에 대한 부담을 가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고 경영진이 대거 교체될 수 있다는 의미다.
부품부문을 맡을 후임 인사로는 직급이나 지금까지 성과 등을 감안할 때 김기남 반도체 총괄 사장이 유력하다. 일각에선 삼성전자 다른 사업부나 그룹 계열사로 이동한 반도체 출신 사장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삼성 반도체 사업 역사상 그런 사례가 전무했고, 현 경영진 체제 하에서 최고 실적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전문가인 김기남 사장은 1981년 삼성에 입사해 반도체연구소 D램 팀장, 차세대 메모리와 이미지센서 개발 담당 임원, D램 개발실장, 반도체 연구소장 등 메모리 반도체 기술 개발 분야에서 활약해왔다. 종합기술원 사장과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2014년 6월부터 반도체 총괄 사장직을 수행해왔다.
부품부문 사업 책임자가 김 사장으로 바뀌면 사내 분위기도 크게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권 부회장은 효율을 중시하는 '워크 스마트(Work Smart)'를 강조했다. 김 사장은 “쎄게 일하자”는 '워크 하더(Work Harder)' 스타일이다. 권 부회장은 부품과 설비 내재화를 강조했지만, 김 사장은 필요하다면 외부 솔루션을 잘 가져다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권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김 사장은 메모리로 시작했다는 차이도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대표를 누가 맡느냐도 주목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4월부터 권오현 부회장이 대표이사직을 겸했으나 디스플레이에 특화된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돼왔다.
새 대표로는 삼성디스플레이 사내이사인 이동훈 OLED사업부 사업부장 부사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1959년생으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시절부터 등기이사로 재직했으며 영업, 전략마케팅 등을 두루 거쳤다.
김성철 연구소장 부사장(1961년생)도 차기 대표 가능성이 짙은 것으로 평가된다. 1961년생으로 삼성SDI AM개발팀장, 삼성디스플레이 플렉서블개발팀장 등을 거쳤다. 2013년 연구임원으로 승진했다.
다만 삼성이 그동안 연구개발 출신을 대표로 선임하는 사례가 드물었던 만큼 차기 대표보다는 OLED사업부장 등으로 바뀔 가능성에 무게가 더 실린다.
박동건 전 삼성디스플레이 대표가 다시 부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 전 대표는 작년 4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권 부회장 직속 보좌역으로 배치돼 디스플레이 사업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 고문역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보통 고문을 맡으면 2~3년간 활동하다 퇴임하는게 수순이지만 박 전 대표는 이례적으로 지금까지 디스플레이 업계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끈을 놓지 않고 있다. 1959년생(만 58세)으로 퇴임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다. 하지만 삼성에서 고문으로 물러났다가 복귀한 사례가 없어 실제 가능성은 낮지 않겠느냐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삼성전자 전체적으로는 정기 인사시점이 다가오고 있어 인사 시기를 다소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통상 11월 말에서 12월 초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는 비상 사태를 겪으면서 사장단 인사를 건너뛰었다. 미뤘던 인사 수요와 권 부회장 퇴진에 따른 후속인사 필요성 등이 겹치며 인사 시점이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사 폭도 상당할 전망이다. 특히 권 부회장이 용퇴를 선언하며 혁신과 쇄신 필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인적 쇄신 가능성이 대두된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