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 사진 몇 장을 공개했다. 연차와 주말 휴일을 이용해 경남 양산 사저에 내려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사진 속 문 대통령은 우산을 들고 사저 뒷산을 거닐었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를 집어 들고 옅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지난달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과 유엔총회 연설까지 숨 가쁜 외교전을 펼친 후 모처럼 느낀 여유였을 것이다.
분위기가 다른 사진도 있다. 문 대통령이 저수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사진이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쭈그리고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는 대통령 모습에서 여유보다는 심각함이 앞서 느껴진다.
남북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을 잇달아 마친 문 대통령 머릿속은 꽤나 복잡할 것이다. 남북 분단 이후 사실상 처음 찾아온 남·북·미 정상 대화 국면이다. 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져 온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도 협상 테이블에서 상세하게 다뤄진다. 문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잡아야 할 기회다.
잡힐 듯 하지만 쉽지는 않다. 비핵화 조건과 로드맵을 둘러싼 북·미 간 협상은 언제 어그러질지 모를 정도로 불안하다. 남북 관계 개선도 북·미 대화와 연계되는 탓에 사정은 마찬가지다. 도보다리 산책에 이은 백두산 동반 등정 이벤트로 국민 기대치는 높아지는데 이를 만족시킬 정도 속도를 낼지 미지수다. 문 대통령이 짧은 휴일 동안 고민을 통해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았길 바란다.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문 대통령이 휴일 동안 우리 경제와 산업 고민도 했으면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수정되고, 일자리 지표는 좀처럼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때 내세운 '일자리 정부' 구호가 무색하다. 산업 분야에서도 자동차·조선 등 주력 제조업 경쟁력이 예년만 못하다. 그나마 양호한 수출은 반도체 의존도가 높다.
기업은 초과이익이라는 성과마저 나쁘게 바라보는 정부와 여당 시각에 갸우뚱하다. 지난달 전자신문이 창간 36주년을 맞아 실시한 기업인 설문조사에서도 50% 이상이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을 부정 평가했다.
모처럼 재개된 남북 대화가 중요하지만 우리 경제를 챙기는 것도 같은 비중으로 중요하다. 남북 대화로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해소되면 경제에 호재다. 동시에 우리 기업과 산업이 활기를 되찾아야 남북 협력을 위한 기반이 마련된다. 우리 경제가 흔들리면 남북 대화는 국민에게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마침 우리 기업과 일자리를 책임지는 산업통상자원부 및 고용노동부 신임 장관들이 본격 업무에 들어갔다. 기업 목소리를 듣고, 치우친 정책 균형감을 되찾아야 한다. 논란이 인 부분은 대안을 마련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야 한다. 문 대통령도 여기에 힘을 실어야 한다.
지난 주말 우산을 들고 생각에 잠겨 있던 문 대통령 머릿속 한편에 '경제' '산업' '기업'이라는 키워드도 들어 있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 기업 기 살리기에 힘쓰기 바란다. 대통령 고민 결과가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준다면 똑같은 휴일 사진 수백장도 환영한다.
이호준 산업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