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고점 논란이 연일 이슈다. 글로벌 투자은행이 앞 다퉈 메모리 반도체 시장 불황을 예고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도 하락세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는다.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산업계에선 '제2의 반도체' 찾기가 한창이다. 바이오,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등 포스트 반도체로 거론되는 차세대 성장 동력을 육성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 가운데 배터리가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 시장 급성장세가 원동력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올해 450만대에서 2025년 2200만대 규모로 늘어날 것이 전망된다.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1600억달러로, 메모리반도체 1490억달러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이 '제2의 반도체'인 배터리 산업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다.
소형 배터리에서는 이미 한국이 리튬이온 배터리 종주국 일본을 제치고 2011년부터 1위를 지키고 있다. 중대형 배터리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최상위권이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에서 5위권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후발 주자인 SK이노베이션도 최근 조 단위 투자 계획과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공급 계약을 잇달아 발표했다.
경쟁국 공세도 만만치 않다. 중국 배터리 산업은 세계 최대 전기차 내수 시장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일본은 차세대 배터리로 종주국 위상을 지키려고 총력전을 펼친다. 여기에 최근엔 유럽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가세했다. '배터리 코리아' 위상도 5년, 10년 뒤를 장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배터리 완제품 업계에 비해 소재·장비·부품 후방 생태계가 열악하다. 주요 제조사가 생산 거점을 수요가 큰 중국, 유럽, 미국 등지로 옮겨 가고 있는 것도 악재다. 첨단 기술과 숙련된 기술자 등 생산 기반이 국내에 뿌리내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자원 개발 실패 사례 때문에 자원 확보에도 여러 걸림돌이 있다.
정부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 최근 정부 주선으로 배터리 3사가 차세대 배터리 펀드를 조성하고 공동 연구개발(R&D)을 시작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정부는 이를 발판으로 차세대 배터리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 전기차 내수 시장을 키우고 관세 부담도 줄여 줘야 국내 투자도 되살아날 수 있다.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해외 광물 자원 확보에도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제2의 반도체' 배터리 육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도 되살아날 수 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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