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몬드 발렌타인(사무엘 잭슨)은 세계 인구를 휩쓸어버리려는 계획을 가진 억만장자다.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과도한 신념이 인간을 바이러스 일종으로 간주하고 없애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을 만들었다.
발렌타인이 선택한 수단은 무료 유심칩과 인체에 삽입하는 '베리칩(Verification Chip)'이다. 유심칩으로 폭력성을 강화시키는 전파를 발생시켜 서로를 해치게 만든다. 사람을 유혹해 목에 베리칩을 '임플란트(이식)'하도록 한다. 버튼을 누르면 칩이 폭발한다. 이후 장면은 무섭다기보다 익살스럽게 묘사되지만 지면에 소개하기에는 부적절하다.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는 다소 극단적 사례이지만 베리칩은 많은 나라와 기업에서 상용화돼 쓰이고 있다. MWC19에서도 베리칩을 시연해 화제가 됐다.
베리칩은 수술, 주사 등 방식으로 인체에 이식하는 좁쌀보다 작은 크기의 마이크로 칩이다. 현재 상용화된 제품은 대부분 RFID 방식으로 작동한다.
베리칩은 2004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개발 초기에는 가축과 애완동물, 멸종위기 동물 관리를 위해 사용됐다. 우리나라는 애완동물 등록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베리칩을 사용한다. 생체정보를 인식하는 용도라기보다 동물 몸에 심어놓고 분실되지 않도록 해 건강정보를 손쉽게 기록하고 관리하기 위한 용도다.
스웨덴 국민은 베리칩을 가장 활발하게 활용한다. 일종의 전자지갑처럼 활용한다. 주민은 베리칩을 회사 출입 신분증처럼 활용할 수 있고, 전자 멤버십 카드로도 사용한다. 국영철도회사 SJ는 승객이 베리칩을 기차표로 활용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스웨덴 베리칩 이용자수는 지난해 말 3000명을 넘어섰다.
베리칩은 미국 일부 기업이 직원관리용으로 도입하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베리칩에 대한 우려의 시각은 많은 편이다. 킹스맨과 같이 인간을 조종해 위협을 가한다거나 종교적 관점에서 구원을 향한 증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인권과 보안에 대한 우려는 보다 현실적이다. 칩이 해킹되면 승인받지 않은 사람이 정보에 접근한 권한을 가지게 되는 등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다만 스웨덴 사례를 보면 베리칩이 현실로 다가온 기술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회적 윤리 논쟁과 더불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 개발 노력을 일단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