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4년은 바이오 전성시대 서막을 알리는 준비기간과 같았다. 투자, 창업, 수출 등 모든 지표에서 매년 기록을 경신하면서 고공 성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미래형 자동차, 비메모리 반도체와 함께 국가 3대 신산업으로 육성할 것을 선언하면서 바이오 주가는 더욱 높아졌다.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사태'는 투자 강화, 규제개선 등 순풍만 불던 산업계에 날벼락과 같다. 자료조작, 사실은폐 등 불법적·비도덕적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되면서 자칫 '제2 황우석 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가장 큰 문제는 '불신'이다.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 이후 산업계가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거품' '불신' 등 바이오에 대한 믿음이 깨진 점이다. 신뢰가 없어지면서 투자, 규제개선 등 성장을 견인할 지원이 끊겼다. 인보사 사태 이후 바이오 업계 스스로가 전문성을 확보해,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
◇고공 성장 속 끊이지 않는 논란들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이 가파른 성장 궤도에 오른 것은 2016년부터다. 신약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한미약품이 글로벌 제약사 제넨텍에 1조원 규모 기술 수출에 성공하면서 성공 가능성을 증명했다. 바이오시밀러쪽에서는 셀트리온이 같은 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하면서 세계 최대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후 후속제품 흥행에 이어 유한양행, 삼성바이오에피스 등도 수출에 성공하면서 바이오·제약 산업은 가장 유망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적 관심과 많은 재원이 집중되면서 부작용도 조금씩 생겼다. 2016년 9월 한미약품 늑장 공시 논란 및 직원 부당이득 편취 사건을 시작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됐다. 국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된 이 의혹은 2017년 3월 금융감독원이 특별감리를 착수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도구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용됐다는 검찰 판단에 따라 삼성그룹까지 수사망을 정조준한 상황이다.
이후에도 △차바이오텍 등 바이오 업계 영업이익 뻥튀기 의혹 △네이처셀 대표이사 주가조작 사건 △셀트리온헬스케어 분식회계 의혹 △경남제약 상장폐지 통보까지 성장기에 접어든 바이오·제약 산업에 악재가 이어졌다.
◇'인보사'는 다르다...신뢰 직격탄
바람 잘날 없던 업계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코오롱생명과학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사건이다. 3월 말 주성분 중 하나가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나온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293유래세포)였음이 밝혀지면서 전면 유통·판매 중단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결과 업체는 이미 이 사실을 알았음에도 허가당국에 보고하지 않은데다 허가를 위해 자료를 조작, 은폐한 사실도 드러났다. 품목허가는 취소됐고, 개발사는 형사고발 당했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발생했던 논란·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동안 대부분 이슈가 회계, 주가와 관련됐다. 하지만 인보사 사태는 환자에게 투여하는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불법적 행위가 드러난 데다 기업 도덕성까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충격이 크다. 문제를 막아야할 허가당국 역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 신뢰가 무너졌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인보사 사태는 기업 전문성, 도덕적 자질 부족과 자료에만 의존하는 허가당국 프로세스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면서 “바이오산업이 주목 받으면서 수혜를 기대한 금전적 불법행위나 경험부족에 따른 회계처리 미숙 등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문제는 환자 안전과 직결돼 충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제2 황우석 사태' 우려까지...업계 확산 방지에 총력
2005년 12월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배아복제 논문 조작 사건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놨다. 우리나라 바이오 붐 근원이자 동력이었던 '황우석 신드롬'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투자, 제도지원 등은 뚝 끊겼다. 한미약품, 셀트리온 등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기 까지 산업계는 사실상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인보사 파동이 '제2 황우석 사태'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사안만 놓고 본다면 인보사 사태는 투약환자, 주주 등 실질적인 피해자를 낳았다는 점에서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 사건보다 심각하다. 현재까지 코오롱생명과학 소액주주는 8만5000명, 투약 환자는 1000명이 넘는다. 피해를 주장하는 각 단체 줄소송이 시작됐다.
최성철 환자단체협의회 이사는 “인보사 허가 전부터 유전자 치료제 안전성 우려와 급격한 규제완화에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정부 부실한 검증이 이 사태까지 끌고 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신뢰가 깨졌다는 점이다. 바이오는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비상을 준비하면서 기대가 컸다. 공공·민간 투자는 물론 규제개선 등 정책지원, 환자 믿음까지 많은 신뢰를 보냈지만 이번 사태로 금이 갔다. 이용자 안전을 최우선시 해야 할 정부 역시 문제를 사전에 막지 못하면서 국민 불신이 커졌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이번 사태로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바이오 전반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것”이라면서 “불신이 바이오산업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성찰 계기로”...정부 투자확대·기업은 전문성 확보
한미약품 늑장공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사태까지 끊이지 않는 사건에 바이오·제약 산업 불신은 커져간다. 가능성을 먹고 크는 산업 특성상 신뢰가 깨질 경우 타격은 막대하다.
그럼에도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겪었던 '잃어버린 10년'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공통된 의견이다. 2005년 당시는 산업기반도 약한데다 실체가 불분명한 기술이었지만 현재는 우리나라 바이오산업 수준이 상당히 올라왔기 때문이다. 코오롱생명과학 기업 하나로 산업이 휘청할 정도로 기반이 약하지 않다.
더구나 정부 역시 바이오산업 육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연구개발과 규제개선 등 지원을 축소할 여지도 적다. 바이오만큼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영역이 없는 상황에서 현 육성 기조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재발방지와 바이오·제약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신기술에 대한 전문성 확보가 시급하다. 세포치료, 유전자치료를 포함해 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가위 등 신기술은 빠르게 개발된다. 상업화 단계까지 이어지려면 기업 개발역량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할 허가당국 전문성도 요구된다.
이 부회장은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 성과를 내야 한다”면서 “성공사례로 바이오 가치를 인식시켜 주는 동시에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에 대해 기업과 허가당국 모두 전문성을 갖출 교육과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