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게임. 두 기업 가운데 하나가 백기를 들 때까지 출혈 경쟁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 용어가 유행하게 된 데는 영화와 관련이 깊다. 1955년 개봉된 '이유 없는 반항'에서 주인공 짐(제임스 딘 분)과 버즈(코리 앨런 분)는 충돌 코스로 서로 마주보고 달린다. 한쪽이 방향을 틀면 파국은 면하겠지만 겁쟁이가 된다. 닭을 빗대어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못 참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묘사한 것이기도 했다.
프랑스 명문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의 김위찬 교수와 러네이 모본 교수는 직관력에서라면 동시대 어떤 경영학자 못지않다. 2004년 블루오션 전략으로 세계 명성을 얻었다. 성장을 위해 기업은 '비슷한 전략과 제품으로 경쟁하는 레드오션 대신 경쟁 없는 블루오션을 찾아내야 한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그러나 두 학자의 직관력을 보면 좀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4년 블루오션이나 2015년 '레드오션 함정'은 너무 깔끔해서 왠지 감흥이 떨어진다. 조금 오래된 칼럼에선 생각의 원류를 더 자세히 보여 준다. 두 학자는 새로운 시장 공간을 창조하려면 기존과 다른 전략 차원의 사고가 필요하다고 운을 뗀다. 그러고는 주어진 룰과 경쟁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참 장황하게 여러 사례를 언급한다. 사뭇 복잡해 보이지만 이런 사례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규칙처럼 굳어진 경쟁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경쟁의 룰은 뒤집어보고, 경쟁의 한계는 확장하라고 말한다.
두 교수는 말미에 시장 만들기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시장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기존 경쟁 시장에만 매몰돼 있는 대신 내 제품이나 기술이 필요한 다른 공간이 없는지 탐색해 봐야 한다. 둘째 고객 관점이다. 기존 고객에게 더 나은 기업이 되는 것과 새 고객을 찾는 것은 전혀 다른 방법이다. 화질이 더 선명했으면 좋겠다는 기존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한 소니의 실패와 읽을거리가 없어서 e북 리더를 사지 않는다는 비소비자에게서 착안한 아마존 킨들의 성공은 유명한 스토리다. 셋째 기존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만큼 소비자 만족을 높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훗날 혁신의 제3원칙으로 소개된 게토레이의 G시리즈도 여기서 착안한 것과 진배없다. 넷째 새 기능만큼 새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스타벅스가 새로 만든 것은 커피가 아니라 커피 한 잔의 가치였다.
치킨 게임에도 분명한 이익이 있다. 일단 승리하면 패자를 굴복시켰다는 희열은 물론 위엄과 이익을 얻는다. 2006년 D램 반도체 치킨 게임의 최종 승자는 삼성전자였고, 그 후 세계 1위 자리는 비로소 공고해졌다.
그러나 패자가 될 경우 상황은 사뭇 다르다. 알렉산더 사후 수하 장군이던 셀레우코스는 소아시아에서 바빌로니아까지를 장악했다. 파니아스 전투에서 이집트를 영유한 프톨레마이오스까지 굴복시킨 후 거칠 것 없어 보였지만 마그네시아에서 로마에 대패한 후 전쟁 배상금을 모으기 위해 전전하고 있을 때 부하에게 암살 당한다.
우리가 쉽게 경쟁이라 부르는 것만 생각하면 그만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고사성어 가운데 치킨게임과 가장 닮은 것은 '동귀어진'이다. 상대방과 함께 죽음으로써 목숨을 다한다는 의미다. 치킨게임 아니면 나만의 공간을 한번 찾아 나서 볼지, 이 오래된 조언을 한번 생각해 보자.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