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핵심 재료 수출을 제한하면 일본 기업들도 적잖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일본 소재 기업들의 매출 손실 발생, 글로벌 시장에서의 고립과 대체재 확보 등 일본에게 결코 유리한 분쟁이 아니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러한 부담에도 일본 정부가 강수를 둔 이유는 정치적 보복과 선거철 점유율 확보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결국 부메랑이 돼 일본 소재 기업들에게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업계에서도 자국 업체들의 매출 악화를 우려할 정도다. 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쥔 기업들이 모두 한국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양사는 신에츠화학, JSR 등 주요 일본 소재 기업뿐만 아니라 도쿄일렉트론(TEL) 등 장비 제조사들의 주요 고객사이기 때문에, 일본에게 결코 득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사례들로 비춰봤을 때 일본이 '잽'을 날리다가 스스로 전략을 바꿀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가 국내 업체들의 반도체 생산에 악영향을 주게 되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필수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최악의 경우 반도체 공정이 '올 스톱'한다. 이때 일시적인 수요 과잉이 찾아오게 되는데,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일본 정부에게 많은 국가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낼 것이라는 평가다.
한 반도체 재료 업체 관계자는 “미국, 중국 등 많은 국가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제품을 사용해 IT 제품을 만드는데, 공급이 끊기면 일본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소자 업체들은 최근 미국 업체 등과 협업해 공급처를 다변화하며 위기에 대응하는 추세다. 또 국내 일부 업체들도 변화에 대응해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정부 과제 수행 등으로 내실을 다진 국내 업체들이 다수 대기 중이라는 게 국내 재료 업계 주장이다.
일본이 이러한 위기 요인을 감당하면서까지 수출 규제를 하는 이유는 '정치 보복' 때문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이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본이 규제 압박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 판결 이후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14명 유가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1인당 9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는 등 강제징용 피해자의 승소 판결이 잇따랐다. 이에 일본이 분위기 전환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7월 말 중으로 예상되는 일본 참의원 선거를 의식해, 8월쯤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한 달이나 앞당겼다는 분석도 있다.
수출 규제를 발표한 일본 정부는 보복 조치가 아니냐는 질문에 “적절한 수출 관리 제도의 운용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