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소재·부품·장비 예산 2조원 시대

[데스크라인] 소재·부품·장비 예산 2조원 시대

요즘 산업계에서는 이른바 '소부장'이 이슈다. 일본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 이후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관심이 급증했다는 말이다. 관심은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 등을 가리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최근 관심은 그 배경이 어떠하든 반갑다. 우리나라 제조업과 산업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재·부품·장비는 제조업 뿌리이자 완제품 경쟁력의 핵심 요소지만 만성적인 핵심 제품 대외 의존도와 부가가치 정체와 같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비록 일본이 촉발한 경제 전쟁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26일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며 “우리 경제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기초가 되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성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등 강경 대응을 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산업 기초 체력을 기르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다.

같은 날 당정도 내년도 예산안 협의를 통해 소재·부품·장비 예산을 2조원 이상 편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소재·부품·장비 산업 자립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예산을 대폭 확대,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한다는 차원이다. 이와 함께 '소재부품 특별법'을 장비까지 포함한 상시법으로 전환하고 국가재정법까지 정비, 관련 정부 사업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국가재정법 개정은 소재·부품·장비 산업 자체에 대한 정책적 시각이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최근 관심이 쉽게 사그라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예전처럼 단기 관심에 머물다 중장기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가 유야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그것이다. 국가 지원과 관심을 장기적으로 끌고 나갈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따라 정부는 특별법을 통해 범부처가 참여하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기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산업 정책으로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대에 내몰렸다. 소재·부품·장비 산업만큼은 경쟁력위원회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정책 추진 체계를 갖춰야 한다.

산업계도 심기일전해야 한다. 혹여나 예산 증액에 편승해 자체 기술 개발보다는 기업 수명을 연명하겠다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내년도 소재·부품·장비 예산 2조원은 전체 예산의 0.5%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3000억원이 채 되지 않던 관련 예산이 10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 제품 불매 등으로 힘을 모으고 있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마련된 재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돌반지까지 끌어 모아 나라를 일으켜 세운 금모으기 운동과 다를 바 없다. 이 예산이 마중물이 돼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거듭나고, 그 과실은 다시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2조원의 무게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양종석 미래산업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