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조만간 차기 총리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논란으로 바람 잘 날 없는 국회가 변수로 꼽히지만 무작정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17일부터 21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등록자 등록이 시작된다. '총선 시계'가 빨라지는 만큼 여당이 이낙연 현 총리에 거는 역할(총리가 아닌 정치인으로서)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당분간 이 총리 체제를 지속할 것이라는 예상도 하지만 총리 교체가 기정사실화된 마당에 한두 달 더 이어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총리가 지명되면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번째 총리가 된다. 이미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 상황에서 신임 총리의 역할은 막중하다. 경제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기업과 국민의 체감경기는 악화되고 있다. '데이터 3법'과 주52시간 근무 보완입법 등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진척이 없다.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 리스크가 여전하고, '타다 금지법' 등 혁신 성장을 가로막는 악재가 속출하고 있다.
그만큼 신임 총리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총리 후보자 인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여느 내각 인사처럼 여러 사람의 하마평이 오르내린 후 경제부총리 등을 지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경제와 관련해 엄중한 시기라는 판단 아래 경제 분야에 초점을 맞춘 총리 인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러나 김 의원은 최근 청와대에 총리직 고사 의사를 전했다. 시민단체와 노동계 등에서 김 의원의 경제 정책 기조를 두고 반대 의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당 내부에서조차 여론 분열을 초래하는 상황이 된 것에 부담을 느꼈다”는 게 김진표 의원실의 설명이다.
다행히 새로운 유력 후보로 기업인, 산업자원부 장관 출신의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떠오르면서 '경제'라는 총리 인사 콘셉트는 그대로 유지되는 듯하다. 정 전 의장도 애초 유력 총리후보의 한 사람인 것을 감안하면 모양새도 나쁘지 않다. 입법부 수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그림이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국회를 상대로 충분한 양해와 설명이 뒷받침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누가 총리로 최종 지명되든 관계없이 걱정되는 것은 총리 후보자 인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시민단체, 노동계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 총리 기용설에 반대 의견이 나왔을 때 거꾸로 경제·산업계에서는 김 총리를 지지하는 입장 표명이 잇따랐다. 기업과 산업정책을 잘 이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시민단체와 노동계 쪽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문 대통령이 인선 과정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마당에 누가 신임 총리가 되든 시민·노동단체 진영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균형 잡힌 정책을 소신 있게 펼쳐 나가기보다는 내년 총선을 의식해 '표밭' 관리를 해야 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부를 통할해야 할 국무총리가 취임하기도 전에 특정 세력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총리에게 '눈치 보기'라는 책무 하나를 더 얹어 놓은 이번 인사 과정이 유감스럽다.
이호준 정치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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