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학내망 개선 사업 이어지지만...과거 답습에 또 누더기 될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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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교과서와 고교학점제 등으로 교실 내 온라인 환경이 강조되면서 내년부터 학교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개선하는 사업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정부는 기존 사업을 앞당겨 마무리하는 것은 물론 초·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교 IT 인프라 전반을 개선한다.

하지만 개선사업이 과거 문제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 몇 년 뒤에 다시 누더기 같은 IT 환경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학내망 개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케이블 공사를 여전히 개별 용역으로 발주해 제대로 된 감독이 이뤄질 지 의문이 제기된다. 충분한 검증작업 없이 신기술을 도입하다보니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표본을 마련하기 위한 시범사업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학내망 문제점 인식, 개선 작업 시작

“온라인 수업을 하기 전에 30분부터 교실 인터넷을 체크해야 했어요. 교실마다 인터넷이 제각각이어서 체크하지 않고 접속했다가는 온라인은 수업에 참여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거든요.”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한 고등학교 학생의 이야기다. 지난해 처음 수업을 시작했지만 인터넷 환경은 미리 개선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학교는 뒤늦게 인터넷 환경을 보완했다.

이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다수 학교 네트워크가 5G 시대에 기가급은 고사하고 평균 100Mbps 속도에 머물러 있어 학내망 개선은 시급한 과제다. 태블릿PC나 스마트폰으로 디지털교과서를 이용해야 하지만 무선네트워크가 지원되지 않아 교사, 학생 모두 애를 먹었다. 교사가 본인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데이터를 나눠 학생이 사용하도록 하는 황당한 수업이 운영됐다.

교육부는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무선AP 구축사업을 서둘러 마무리 짓는 동시에 학내망 개선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전국 초·중학교에 태블릿PC와 무선AP 4개를 공급하는 사업을 계획보다 1년 앞당겨 상반기까지 마무리한다. 동시에 시도교육청별로 학내망 개선사업을 추진한다. 일부 교육청은 벌써 사업을 시작했다. 제주교육청이 스타트를 끊었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앞두고 무선 AP를 전국 모든 고등학교까지 확산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내년 전국 모든 고등학교 4개 교실에 기가급 무선AP를 설치한다. 예산은 140억원을 투입한다. 2021년부터는 학내망 개선사업과 함께 모든 고등학교 교실에서 무선인터넷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고교학점제가 시작되는 2025년부터는 모든 고등학교의 모든 교실에서 안정적이고 빠른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반복되는 '주먹구구'식 네트워크공사

통신망이 학교 담장까지는 500Mbps 속도를 내지만 안으로만 들어오면 먹통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학내 망관리 부실에 있다. 전담 직원도 거의 없고 교사가 이를 맡는다고 해도 순환제로 인해 업무 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주먹구구 케이블 공사가 화를 더 키웠다. 정보통신공사로 발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장비 구입에 더해 용역 발주를 하다보니 케이블 공사는 하청업체에게 맡기기 일쑤였다. 도면조차 없는 상태에서 필요에 따라 확장해 누더기처럼 학내망이 관리되고 증설됐다.

최근 학내망 개선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 문제는 여전하다. 용역 발주로 묶어 규모를 키우는 것이 발주자 입장에서도 편하고 큰 기업이 수주하기에도 유리하다. 공사로 발주하면 설계·시공·감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보통신공사법 역시 스위치, 방화벽 등 학내망에 들어가는 정보통신 설비를 설치할 때 공사로 발주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조달청 용역 고시를 따라 대부분 용역으로 발주된다. 충북도교육청은 학내망 개선사업을 공사 분리발주가 아니라 협상에 의한 방식으로 추진하려다 16일 도의회에서 관련 사업 예산 전액이 삭감됐다. 도의회 교육위원회는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발주하면 중견기업 이상만 참여할 수 있어 지역업체가 하청, 재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최근 사업을 진행했던 제주 역시 공사 비용이 컸는데도 전체 사업으로 함께 발주됐다.

학내망 관리를 위한 신기술 도입 역시 지지부진하다. 학내망을 관리하는 전담 직원이 없어 원격으로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SDN)가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일부 지역에서만 거론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담당자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학내망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시범사업도 실시했다. 올해 상반기 8개 권역 22개 학교를 대상으로 학내망 개선 모델을 만들었다. SDN 기반으로 학교 관리자 없이도 중앙에서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교육청에 따라 일부는 SDN을, 일부는 기존 네트워크관리시스템(NMS) 모델을 도입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청에서 각자 여건에 맞게 SDN 또는 기존 NMS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학교 담장까지만 교육청이 관리하는 NMS 모델은 학내망까지는 원격으로 제어하기 힘들어 SDN을 중심으로 한 시범사업이 추진됐다. 시범사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범사업에서 각 지역 교육청에서 솔루션을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 줘야 하지만 검증절차 없이 SDN을 적용해 보는 형태로 끝났다. 지역에서 일반적인 조달평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 네트워크 전문가는 “소프트웨어와 장비가 연동이 되고 규격이 제대로 준수됐는지 검증 절차를 명확히 해줬어야 했는데, 이를 교육청이 도입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면서 “교육청이 업체 경력이나 능력에 대해 허위 가능성을 검증하기에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예산 문제도 여전하다. 올해 시범사업 후 학내망 개선을 위해 8000억원에서 1조원에 이르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대략적인 계산이 나왔다. 무선AP를 아무리 구축해도 밑단의 학내망이 정비되어 있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정부도 인지하면서 학내망 사업을 더디게 추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거버넌스 이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학교 IT 인프라에는 학내망 뿐만 아니라 보안, 디지털교과서 등 교육과정, 교원업무(교육행정정보시스템) 등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있다. 이를 통합 관리하는 체계가 미흡해 학내망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