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반도체 소재·부품 내재화를 강화하면서 삼성전자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로 안정된 공급망(SCM) 구축이 절박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3개 소재에 대해 한국 수출을 규제하자 삼성전자는 일본산 소재, 부품, 장비를 전수 조사했다. 의존도 등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당시 최고경영진이 매일 회의를 가질 정도로 긴박하게 움직였다. 삼성전자는 수출규제 이후 공급망 강화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반도체 사업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지금도 내부에서는 이런 사태가 한 번 더 일어나면 상당한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삼성이 추구하는 방향은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공급망 구축'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된다. 그 구체적인 대상과 방식이 SK그룹과 같이 인수를 통한 방식이 될지, 소재 분야에 집중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급성과 필요성을 절감한 만큼 밑바닥 원재료서부터 장비, 시스템까지 광범위하면서도 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방식으로 실행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SK와 달리 소재보다는 장비 쪽 기술 확보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세메스다. 일본 다이닛폰스크린(DNS)과의 합작사(한국DNS)로 출발한 세메스는 2010년 삼성전자가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이후 회사를 육성, 연매출 2조원 규모의 국내 최대 장비사로 만들었다.
세메스는 현재 삼성 장비 국산화 최전방에 선 모습이다. 이 회사는 최근 삼성전자 시안2공장에 5세대 V낸드 플래시 식각(에칭) 장비를 공급하는 성과를 냈다. 반도체 회로를 깎아내는 식각 장비는 일본의 도쿄일렉트론(TEL)이 주도하던 분야다. 세메스는 또 삼성디스플레이에 퀀텀닷(QD) 디스플레이 양산용 잉크젯 프린팅 장비 공급도 따내, 삼성 장비 국산화 전략 중심에 섰다.
반도체 소재·부품 분야에 있어 삼성은 지금까지 자체 생산보다는 일본이나 미국, 또는 국내 중견〃중소기업과 공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략적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해 반도체 소재 쪽에 지분투자를 한 건 2017년 솔브레인과 동진쎄미켐 정도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역시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일본 수출 규제로 핵심 소재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했기 때문이다. 차세대 반도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도가 크고, 희소성이 높을수록 보다 적극적인 지분 투자 및 인수합병을 고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소부장 투자는 한국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두 회사의 메모리 반도체가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이들 회사의 반도체 수출이 국가 전체 수출에서 비중(2019년 기준 17.3%)이 큰 현실을 감안하면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고 지속 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삼성과 SK 같은 대기업이 기술을 내재화하고 관계사와 계열사를 통한 사업 확장을 추진하면 추진할수록 다른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설자리는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대기업 쏠림은 균형 있는 발전을 어렵게 해 반도체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는 부정적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반도체 소재업체 관계자는 “반도체 소자 대기업이 수직계열화를 하면 필요 소재를 적기 개발하는 장점이 있겠지만, 경쟁 제한으로 궁극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삼성 내부 '재발땐 끝장' 위기감 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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