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지난해 11월 '산업전략2030'을 최종 확정했다. 독일의 산업전략2030은 비즈니스 환경을 개선하고 미래 핵심 기술 개발과 기술 자주권을 유지하기 위한 청사진을 담고 있다. 기술 측면에서는 인공지능(AI)·바이오·나노·퀀텀 기술을 '게임 체인저'로 규정하고 미래 기술 확보에 전력을 다한다는 내용이다.
산업전략2030의 핵심은 비즈니스 환경 개선이다. 법인세와 사회보험료를 인하하고 노동시장 혁신, 인프라 구축, 원자재 전략 도입 등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30%인 기업 과세 부담을 25% 이하로 낮추고, 연구개발(R&D) 세제 혜택을 확대한다. 또 노동시장 혁신을 위해 최대 노동시간을 주간 단위로 규제하고, 직업교육시스템 디지털화와 함께 외국인 기술 전문직도 적극 유치한다.
세부 전략도 그렇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사회적 합의 방식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2월 초안을 발표한 이후 산업계와 학계의 요구 사항을 적극 받아들였다. 그 결과 법인세 완화, 노동 개혁 추진, 인프라 구축 등 비즈니스 환경 개선 내용이 대거 추가됐다. 또 국가의 시장 개입은 자국 보안과 기술 자주권이 위협받을 때만 가능하도록 명시했다. 전략에 기업 의견이 많이 반영됐고, 국가 개입 내용도 적절하게 조정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독일의 중장기 전략은 산업 구조가 비슷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독일은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현재 23%에서 25%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결국 독일 경제산업 부흥의 열쇠는 제조업이 쥐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2019년 기준)은 독일보다 높은 27.8%다. 한 때 30%를 넘던 비중이 낮아진 것이지만, 제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만만치 않다.
이런 와중에 우리 산업계는 보호무역주의와 주변국과의 갈등, 수요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산업 선진국들과 경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 간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에게 사회적 합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산업정책2030을 구체화하면서 약 10개월 동안 의견 수렴과 합의 과정을 거쳤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이 된 원인을 냉철히 분석하고, 반백 년이 넘는 기간동안 시민교육에 주력했다. 그 결과 사회정책은 물론 산업정책까지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는 토양을 마련했다. 물론 사회적 합의보다 국가적 실천이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와 독일은 전략의 출발선부터 다른 셈이다.
최근 20대 국회 막바지에 일사천리로 통과된 일명 '타다금지법(여객운수법 개정안)' 사례를 보며 우리 기업인들이 느끼는 무력감이 만만치 않다. 위원이 18명뿐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조차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산업계의 혁신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표만 좇는 정치가 지금도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대 국회도 기대를 저버렸다. 또 현재의 정쟁을 보고 있노라면 21대 국회도 이미 암울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뒷걸음만 하고 있을 터인가. 경쟁자들은 이미 너무 앞서가고 있는데 말이다.
양종석 산업에너지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