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어니스트 섀클턴.
어니스트 섀클턴.

20세기 초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가이자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섀클턴은 1914년 27명의 대원과 함께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남극대륙 횡단에 나선다. 그러나 남대서양 사우스조지아섬에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 지 한 달 보름여 만에 부빙(浮氷)에 갇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후 1년 3개월 동안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얼음 위에서 표류한다. 탐험의 목표는 이미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오로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가 시작됐다.

아이러니하지만 섀클턴을 신화로 만든 것은 바로 이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대원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투를 벌인다. 결국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 대원을 귀환시켰다. 항해 시작부터 귀환까지 600일이 넘는 기간이 소요됐으니 과연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곱씹어 보게 된다. 그의 여정이 '위대한 실패'로 불리는 이유다.

섀클턴에게는 과연 어떤 리더십이 있었을까. 무엇보다 상황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유연하게 대처한 것이 첫손에 꼽힌다. 그러면서도 대원들과 신뢰를 쌓기 위한 소통에 주저함이 없었다. 대원들은 모두 생면부지로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얼음 위에서 표류할 당시 대원 모두가 제비뽑기를 해서 침낭을 배분했지만 항상 하급 대원에게 좋은 침낭이 돌아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위험을 피하지 않고 항상 솔선수범한 섀클턴이 있었기에 그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섀클턴의 탐험기를 떠올린 것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인듀어런스호와 묘하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2020년을 맞으면서 우리 경제와 산업계는 그야말로 희망에 넘쳐 있었다. 1년 넘게 지속된 수출 부진이 개선되고, 반도체를 필두로 산업계 활력도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두 달 만에 완전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섀클턴이 매일 밤 칠흑 같은 어둠 속과 차디찬 얼음 위에서 되새겼을 다짐과 태도가 아닐까. 바로 역경과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르는 '회복 탄력성'이다. 개인은 물론 기업도 마찬가지다. 밑바닥까지 떨어지더라도 강한 회복 탄력성만 있으면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법이다. 우리 산업계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며 기어코 산업 강국으로 도약한 것도 회복 탄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찾아올 반전의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이미 '언택트' 기류로 정보기술(IT) 시장에 새로운 수요가 늘고 있다. 석유, 화학, 철강, 조선 등 전통 제조업은 혹한기를 버텨낼 체력을 길러야 한다. 섀클턴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희생을 강요했을지,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국민 개개인을 포함한 모든 경제 주체 간 신뢰 구축도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호의 키를 잡고 있는 정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나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정부에 리더 자격을 부여할 국민은 없다. 대한민국호의 표류는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간은 리더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데스크라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양종석 산업에너지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