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패배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그러나 이렇게 큰 차이로 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총선을 며칠 앞두고 통합당은 판세가 불리하다며 지지를 호소하는 '읍소' 전략을 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방심은 금물이라며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을 당내에 주문했다. 여야가 득표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저마다 유리한 전략을 펼치는 것 정도로 이해했다.
투표 후 뚜껑을 열어 보니 통합당의 읍소는 말 그대로 생존전략이었다. 엄살이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시민당 180석, 미래통합당·한국당 103석. 무려 77석 차이로 민주당의 압승, 통합당의 참패였다.
총선 결과로 입은 통합당의 상처는 드러난 숫자 이상이었다. 참패로 인한 후폭풍은 숨 쉴 틈 없이 불어닥쳤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선거 날 저녁 총선 개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전쟁에서 패하고 장수까지 물러난 당에 남은 건 혼란뿐이었다. 당 대표가 사임한 것 말고는 철저한 반성도, 뚜렷한 혁신도 없는 상황이 총선 이후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통합당은 지난 22일 부랴부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정하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카드를 택했다. 총선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전 선대위원장에게 당의 '리부팅'을 맡기는, 어찌 보면 과감하고 혁신적인 선택이지만 달리 보면 다소 어이없는 선택이다.
개인의 정치 성향을 떠나 통합당의 추락은 안타깝다. 정치 세계엔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지만 2016년 20대 총선 이후 대선, 지방선거에 이어 21대 총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내리 4연패한 통합당에 동정의 눈길이 간다.
입법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야당의 존재는 필수다. 국회에서 '슈퍼 여당' '공룡 여당'을 견제하는 것은 제1야당의 몫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일방향으로는 곤란하다. 나쁜 정책의 일방 전개가 위험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통합당이 패배의 충격을 추스르고 빨리 제1야당으로서 제자리를 찾기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통합당을 응원하고 싶어도 무엇을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다.
선거 과정에서 통합당이 보인 비례정당 설립과 이어진 후보 공천 논란은 지우더라도 선거 이후 사태를 회복하는 모습은 더욱더 실망스럽다. 23일에는 전날 나온 '김종인 비대위' 결정에 대한 반발이 확산하며 또다시 시끄러운 모습이다. 어느 것에도 당론을 모으지 못하면서 분열 양상만 보인다.
통합당은 4년 전 20대 총선 패배 후에도 한 차례 리부팅 기회가 있었다. 전신인 새누리당이 당시 여당이었음에도 야당인 민주당에 1당 자리를 내줬다. 비대위가 구성되는가 싶었지만 혁신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결과는 대선·지방선거·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21대 총선이 끝난 후 국회에서 열리는 통합당 행사장에는 '국민 뜻 겸허히 받들어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자주 보인다. 의례적인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이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결과물로 보여야 한다. 21대 국회 개원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통합당이 혁신에 성공해서 건강한 야당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호준 정치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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