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총수 부재 땐 '메가 투자' 지체…"반도체 1위, 구심점 필요"

영장실질심사 하루 전 입장문 발표
수사심의절차 진행…부당성 지적
미래성장 180조·반도체 133조 등
이 부회장 석방된 2018년 이후 발표

[이슈분석]총수 부재 땐 '메가 투자' 지체…"반도체 1위, 구심점 필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여부를 결정할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삼성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2017년 2월부터 1년여 간 구속 수감된 이 부회장이 2년 4개월 만에 또다시 구속될 경우 경영공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는 이 부회장 구속은 부당하고 경제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호소했다.

검찰은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장기간 사건을 수사해온 명분에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삼성 호소문 “검찰 영장청구 부당…경영정상화 기회 달라”

신경영 선언 27주년이자 이 부회장 구속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7일 삼성은 입장문을 내고 이 부회장 구속수사 부당함을 지적하며 경영정상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검찰과 갈등이 표면화한다는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여론전에 나선 것은 그만큼 삼성의 위기의식이 절박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삼성은 “적법 절차에 근거한 검찰 수사 심의 절차가 진행 중임에도 이 부회장 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며 검찰 영장청구 부당성을 지적했다.

삼성은 이 부회장 거주지가 일정하고 국내 최대 기업 총수로서 도주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 충분한 조사를 실시한 만큼 증거인멸 우려도 없다고 강조했다.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구속 사유에 이 부회장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은 경영권 승계 관련 이 부회장 위법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을 사실처럼 보도한 언론에 대해서도 정면 반박하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구심점 또 잃나…혼돈의 삼성

삼성과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글로벌 삼성을 이끌 '구심점'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전문경영인을 영입한다 해도 수십 조~수백 조원에 이르는 '메가 투자·메가 빅딜'을 신속히 진행하려면 총수 결정이 필수라는 것이다.

△미래 성장사업 180조원 투자(2018년 8월) △시스템 반도체 2030 비전 133조원 투자(2019년 4월) △퀀텀닷(QD) 디스플레이 13조1000억원 투자(2019년 10월) △평택캠퍼스 최첨단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증설 약 10조원 투자(6월 1일) 등 삼성의 대규모 투자발표는 모두 이 부회장이 석방된 2018년 2월 이후 이뤄졌다.

특히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1위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대만 TSMC 등과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총수 부재는 결정적 패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이 최근 공격적 인수합병(M&A) 시도에 나선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수년째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 아마존은 지난달 말 영국 화물운송 스타트업 '비컨'에 1500만달러를 투자했다. 애플은 4월 초 일주일 만에 3건의 스타트업을 잇달아 인수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지난 달 통신 소프트웨어 업체 '메타스위치 네트워크'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은 M&A를 통한 추가 성장동력 발굴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이재용 부회장 결단으로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4년 가까이 대규모 M&A가 없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2017년부터 구속 등 사법리스크에 본격 연루된 것과 M&A 성과가 없는 게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속 필요성' 치열한 공방 예상…수사심의위는 별도 진행

이 부회장 등은 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는다. 구속 여부는 이날 늦게 또는 9일 새벽 결정될 전망이다. 영장이 발부되면 이 부회장은 2년 4개월 만에 구치소에 수감된다.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의 경영권 승계 문제가 이 부회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본다.

이 부회장이 두 차례 소환 조사에서 “보고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을 들어 증거인멸을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1년 7개월간 수사가 충분히 이루어져 수집 가능한 증거가 모두 수집됐고, 이 부회장이 도주할 우려도 전혀 없다는 점을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또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기소 여부가 타당한지 객관적 판단을 받기 위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는데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절차상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은 금융당국과 법원 판단이 엇갈린 만큼 양측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 부회장 측이 신청한 수사심의위 소집 절차는 구속심사와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은 지난 5일 수사심의위 회부 여부를 결정할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에 부의심의위원회 위원(15명)을 공정하게 선정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시민위는 15명의 위원 및 예비위원을 선정해 회의 일정을 잡는 중이다. 그러나 8일 이 부회장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은 사실상 무의미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속영장이 기각되더라도 1년 7개월 이상 수사를 끌어온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은 낮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