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기소] 검찰, 결국 기소…삼성 '사법리스크' 고조

[이재용 부회장 기소] 검찰, 결국 기소…삼성 '사법리스크' 고조

검찰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권고를 뒤집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하면서 삼성은 다시 한 번 위기에 봉착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투자와 경영을 이어왔지만, 향후에는 재판 대응 등으로 정상적 경영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에서도 삼성 경영 공백이 가져올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이 1일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직원 10명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삼성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삼성과 이 부회장은 2016년 말부터 시작된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와중에 새로운 사건으로 기소되면서 사법 리스크가 한층 커졌다. 재판 절차 등을 감안할 때 향후 최대 5년 이상 사법 리스크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현재까지 3년 6개월째 국정농단 사건의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긴 재판을 거쳐 지난해 8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했고,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이번에 기소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도 혐의가 복잡하다.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2년여에 걸쳐 50여 차례 압수수색, 삼성 임직원 110여 명에 대한 430여회 소환 조사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왔다.

이례적으로 장기간에 걸친 초고강도 수사에도 불구하고,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검찰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판단한 것만 봐도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존재한다. 때문에 법정에서도 검찰과 삼성 측은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며, 재판 역시 장기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재계는 재판이 길어지면 삼성이 총수 역할 약화로 인한 경영 위기를 겪을 것으로 우려한다. 일상적 경영 활동은 전문경영인(CEO) 중심으로 추진할 수 있지만,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 등 전략적 결정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전문경영인들로는 불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불확실성 시대에 대규모 투자나 인재 영입 같은 걸 해결해줄 리더 역할은 이재용 부회장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최근 삼성은 이 부회장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계획과 미래 전략을 추진해왔다. △180조원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 △133조원 규모 시스템반도체 사업 육성 방안 △13조원 규모 차세대 디스플레이 투자 등과 같은 초대형 사업계획이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과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수년간 이어진 검찰 기소와 재판 등으로 해외 행보에 제약을 받아왔다. 이미 특검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이 부회장이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 지주사인 엑소르의 사외이사직을 사퇴했고, 중국 보아오포럼 상임이사직 임기 연장도 포기했다. 거물급 글로벌 경영인을 비롯한 주요 인사와 네트워킹하는 자리인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 등에도 수년째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상황도 삼성에 우호적이지 않다. 삼성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 심화, 한일 외교 갈등, 코로나19 확산, 글로벌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한 위기를 겪으며 실적이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법 리스크까지 더해져 초유의 복합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다”면서 “자칫 기회를 상실해 경쟁 대열에서 낙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7년 초 특검 기소에 따른 재판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새로운 재판이 시작돼 앞으로 5~10년 간 삼성의 정상적 경영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대 9100억원에 달하는 국부 유출 가능성도 제기한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승인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최소 7억7000만 달러(9108억원)의 피해를 봤다”면서 2018년 7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간 분쟁(ISD)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의 이 부회장 기소는 ISD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 수사팀이 주장하는 의혹과 엘리엇의 논리가 유사한 측면이 있어 소송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엘리엇은 법무부에 검찰 수사 자료를 요청했다. ISD 중재재판부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며 엘리엇 요구를 기각했으나, 재판이 시작되면 민감한 수사자료 제공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는 “ISD 중재 소송에서 엘리엇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했고, 로이터는 “검찰의 수사는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