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파운드리 업체가 반도체 위탁생산 가격을 줄줄이 인상하고 있다. 납기 지연에 따른 공급 부족에 이어 가격 압박까지 커졌다. 파운드리에 칩 생산을 맡긴 팹리스 업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등 정보기술(IT) 기기 제조사 등 전자 산업 전반에 걸쳐 공급 부족이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국내에 생산기지를 둔 DB하이텍과 키파운드리를 비롯해 중국 SMIC, 대만 UMC 등은 이미 칩 생산 가격을 올렸거나 올릴 예정이다. 가격 인상 폭은 기존 가격의 10~20%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파운드리 업체에 웃돈을 주면 먼저 생산해서 납품해 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파운드리 공급 부족은 특히 8인치 파운드리 시장에서 극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 등의 전기차 생산이 점차 늘고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IT 디바이스 수요 폭증으로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 8인치 파운드리에서 생산되는 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는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내년 초까지 국내 청주 팹에서 중국 우시 공장으로 생산 라인을 이전하는 SK하이닉스 시스템IC는 양쪽 공장 모두 빡빡한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월 30만장 규모의 8인치 파운드리 팹을 보유한 삼성전자도 이미 올 한 해 생산 물량이 꽉 찬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UMC에는 정전 사태까지 일어나 일부 라인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국내 팹리스 업체 대표는 31일 “수십년 반도체 시장에 몸담았지만 극심한 파운드리 쇼티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8인치 파운드리 증설 속도는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12인치 파운드리 투자에 힘을 쏟으면서 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8인치 팹 비율이 점차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수요 충족을 위한 증설을 당장 시작하기도 쉽지 않다. '레거시 공정'이 된 8인치 웨이퍼 장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중고 8인치 장비는 귀한 몸이 됐다. 신규 8인치 장비 가격을 올려서 증설 결정을 내리기도 부담”이라면서 “파운드리 업체는 상황이 나은 12인치 팹 공정을 권유하고 있다. 12인치 장비를 8인치 장비로 개조하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공급 부족 현상으로 직접 타격을 받는 곳은 팹리스 업계다. 제조 비용은 늘어나는데 가격 경쟁력을 고려해 무작정 단가를 올릴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기초 체력이 부족한 국내 중소업체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팹리스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가격이 10%만 올라도 회사 경영이 큰 타격을 받는다”면서 “신규 칩 개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쳐서 걱정”이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정보통신기술(ICT)업계 전반으로 공급 부족이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업계의 생산 차질은 물론 스마트폰, 노트북 PC, 데이터센터 등 주요 ICT 기기 생산 라인에서 벌어지는 부품 수급 불균형으로 올 상반기 전자 산업 전반의 생산량이 최대 10% 줄어들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8일 2020년도 4분기 실적발표회에서 “파운드리 공급 부족이 모바일 시장 수요에 영향을 미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우 SK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새 장비를 입고하기 어려운 8인치 파운드리 특성상 올해도 공급 부족 현상은 불가피하다”면서 “올해 각 파운드리 회사에서 증설이 있더라도 내년부터 웨이퍼 수요가 급증, 관련 수급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