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산, 대구 등 지방자치단체가 자가통신설비(자가망)를 이용한 공공와이파이 등 대민서비스를 확대하면서 지자체와 통신사, 중앙부처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자가망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 이용자만 사용 가능한 설비로, 타인에게 통신을 제공하는 등 목적이외 사용이 제한된다. 하지만 지자체는 여유 설비 효용과 국민 복지를 넓히기 위해 법률 개정을 해서라도 활용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공익산업법센터가 주최한 '지방자치단체의 자가망 설치·운영 쟁점과 과제' 세미나에 참석한 경제·법조계 전문가는 무분별한 자가망 확대에 앞서 세금 투입 등 사회 전체적 경제효용을 명확하게 집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법률적으로 자가망을 활용한 대국민 통신서비스가 지자체와 민간 간에 공정경쟁 원리에 부합하는지 엄밀하게 분석, 정부가 효과적인 자가망 정책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가망 논란 쟁점은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자가망 논란의 핵심 쟁점은 자가망이 민간 시장을 교란하는지 여부, 법적인 해석, 경제성 평가 문제”라며 “그 중에서도 경제성 평가가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교란과 관련, 신 교수는 상용 전기통신설비 구축이 어려운 지역 등을 중심으로 자가망을 구축한다면 민간시장 침해 우려를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다만 지자체 입장에서는 통신, 전력망을 동시에 구축한 공동구를 공공와이파이와 스마트도시용 서비스 등으로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존재한다. 나름 타당한 면이 존재하지만, 스마트도시가 확장돼 민간 서비스와 중복될 경우에는 논란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법률적 쟁점과 관련, 전기통신사업법(65조) 상 자가망을 이용해 타인통신 매개를 금지한 조항을 보다 명확하게 하고 스마트도시법 등 타 법률과 관계를 살펴 정합성을 높이는 게 과제로 지목됐다.
신 교수는 자가망에 대한 경제성 평가가 정당성을 판단하기 위한 핵심 요건이 될 것이라고 봤다. 자가망 방식 공공와이파이 서비스 등은 지자체가 기존 구축한 여유 설비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원가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지자체 자가망 구축에 소요되는 원가가 민간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면 정부·지자체가 세금을 투입해 민간사업자 경쟁을 제한하는 '구축(크라우딩-아웃)'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객관적 경제성 평가 필요
지자체는 자가망 구축 초기 투자비가 크지만, 운영비가 저렴하다고 주장한다. 회선 임대 방식은 서비스 추가에 따른 임대비용이 지속 증가될 것이라는 우려다.
통신사는 통신설비 특성상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 수명이 짧고 주기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해 10년 이상 총 소유비용 관점에서는 회선 임대가 자가망에 비해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신 교수는 회선 임대 비용의 경우 정부 차원 지원과 협상력에 따라 절감이 가능하다고 봤다. 서비스 확대, 회선수 증가에 따른 요금인하와 더불어 무선국 면허세, 점용료 인하 등 정책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통신사 요금 인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신 교수는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손익분기점(BEP)이 중요하다”며 “자가망 운용으로 인한 BEP가 발생하는 시점이 1년이라면 자가망이 유리하고, 2030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시나리오마다 해석이 다르므로 연구기관과 이해관계자가 공동으로 분석해 객관적 결과 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가망의 사회전체 효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가망 구축에 따른 정부예산 투입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정보 격차 해소라는 '양(+)의 효과'가 발생하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통신사 수익 저하라는 '음(-)의 효과'를 수반하기 마련이고, 통신사는 통신요금 인상으로 보충하려 할 수 있다. 사회적 효용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수반되지 않은 채 최악의 경우, 자가망 유지를 위한 국민 세금부담과 통신비 부담이 동시에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신 교수는 “자가망 구축과 임대 방식이 별개가 아니라 맞물려 있다”며 “엄밀한 경제성 평가를 통해 사회적 효용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가망 정책, 합법성 갖춰야
이상우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자가망 논란의 핵심은 목적이외 사용 제한 규정”이라며 “규제 완화로 자가망의 활용범위가 확대됐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특정 이용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게 제도의 본질이며 원칙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문위원은 지자체 자가망을 활용한 공공와이파이 활용과 관련,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을 토대로 합법·비합법 전기통신서비스 제공 모델을 제시했다.
'협력 모델'(유형1)은 와이파이 구축 비용을 지자체와 정부, 통신사가 매칭펀드를 구성해 조달하고 통신사가 통신망관리, 유지보수를 전담하는 것으로 사실상 자가망과 무관하며 합법적이다.
'공공·사설파트너십 모델'(유형2)은 지자체와 사업자간 계약으로 통신사가 지자체가 구축한 자가망을 활용해 공공와이파이 등 초고속인터넷 접속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 자가망 설치자가 기간통신사에 자가망 설비를 임대할 수 있으므로 합법적으로 봤다.
'자치모델'(유형3)은 서비스 제공, 망구축 주체가 모두 지자체가 전담하는 방식이다. 공공와이파이 특성상 지자체가 자신이 아닌 법적으로 타인에 해당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불특정다수를 향해 서비스하는 모델이므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제시했다.
'외부계약 모델'(유형4)은 지자체가 무선AP만을 직접 설치하고, 그외 와이파이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설비는 통신사 설비를 임대해 공공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전문위원은 지자체는 AP만 구축하고, 다른 설비는 사업용을 사용하므로 주민 서비스 용이라는 계약이 포함될 경우 타인통신매개 금지 조항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전문위원은 “자가망 신고 의무는 2014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옛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서 지자체 장으로 이관됐다”며 “지자체가 설치 목적 이외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통제 기제가 없이 자기 감독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감독 주체 등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