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2>과학선현 장영실

[과학기술이 미래다] <2>과학선현 장영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세종대왕이 관노(官奴) 장영실을 발탁한 일은 적재적소 인사의 전형(典型)이다. 장영실은 '과학선현'(科學先賢)으로 불린다. 삶은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언제 태어나고 몇 살 때 어디서 죽었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관한 기록이 없다. 세종은 장영실의 재능만 보고 발탁해서 중용했다. 엄격한 조선 초기의 신분사회에서는 불가능한 등용이었다. 대신들이 반대했지만 세종은 이를 물리쳤다. 능력만 보고 과학기술자로 특별 우대한 것이다.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고 반란이었다.

장영실은 세종의 기대에 부응했다. 세계 최초의 우량계 측우기를 비롯해 자격루 등 천문기구를 발명함으로써 세종이 15세기 세계 최고 과학기술 시대를 여는 데 뒷받침했다. 장영실의 삶은 극에서 극으로 이어진다. 관노 신분으로서 혜성처럼 등장해 정3품이란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지만 임금이 타고 다니는 가마 안여(安輿)가 부서지는 바람에 역사의 뒤안길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관노 장영실이 궁으로 들어온 것은 세종 즉위 이전인 태종 때다. 시기가 언제인지는 기록이 없다. 조선 초기에 도천법(道薦法)이 있었다. 각 지방 수령이 능력 있는 인재를 임금에게 추천하는 제도다. 아산 장씨 족보에 따르면 장영실은 시조인 장서(蔣壻)의 9세 손이다. 장영실과학관은 장영실이 1390년 동래(현 부산)에서 태어났다고 소개하고 있다. 당시 노비에게는 성(姓)도 족보도 없었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노비면 그 자식도 노비였다.

어린 시절 장영실은 총명했으며, 농기구 수리나 무기 등을 만드는 손재주가 뛰어났다. 자기 손에 쥐어지면 어떤 문제든지 해결하는 만능 관노였다. 그런 소문이 경상도 관찰사 귀에 들어갔다. 장영실은 경상도 관찰사의 추천으로 동래에서 한양(서울)으로 왔다고 한다. 세종을 만나면서 장영실의 삶은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세종을 만났기에 장영실은 조선 최고 과학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1421년(세종 3년) 세종은 윤사웅, 최천구, 장영실을 중국에 유학 보냈다. 두 사람은 양반이고 장영실만 노비였다. 세종은 이들에게 중국에서 천문학을 배워 오도록 했다. 세종은 천문(天文)을 최우선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던 시절에 날씨와 절기를 아는 건 '풍년농사'의 필수 조건이었다. 1423년(세종 5년) 세종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장영실을 정5품 상의원 별좌로 임명했다. 이조판서 허조가 반대했지만 세종은 이를 물리치고 강행했다. 그해 9월 16일자 세종실록에 장영실에게 벼슬을 내리고자 대신과 논의한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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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선에게 명해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의논하기를 “행사직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 소주·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계묘년 무렵 상의원 별좌를 시키고자 이조판서 허조와 병조판서 조말생에게 의논했더니 허조는 '기생 소생을 상의원에 임용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굳이 하지 못하다가 그 뒤 다시 대신들에게 의논한즉 유정현 등이 '상의원 별좌에 임명할 수 있다'고 하기에 내가 별좌에 임명했다.”

기록에서 보면 장영실은 원나라 출신 아버지와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상의원은 임금 의복과 궁중에서 사용하는 일용품과 재산을 관리하는 관청이었다. 그때 세종은 장영실을 면천(免賤)시켰다. 장영실은 관노 신분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자로서 두각을 드러내며 승승장구했다. 1424년(세종 6년) 장영실은 물시계인 경점지기(更點之器)를 만들었다. 이에 세종은 그해 5월 장영실을 정5품 행사직으로 승진시켰다.

1433년(세종 15년) 장영실은 자격궁루를 만들었다. 그해 9월 16일자 세종실록.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보다 뛰어나서 매일 강무(講武)할 때는 나의 곁에 두고 내시를 대신해서 명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이것을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했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1434년 장영실은 새로운 형태의 물시계 자격루를 완성했고, 그해 7월 세종은 자격루를 조선 최초의 표준시계로 반포했다. 1437년 장영실은 해시계인 현주인구·천평일구·정남일구·앙부일구를 만들었다. 앙부일구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였다. 강원 양구군은 중앙로에 지금 4m, 높이 2m인 대형 앙부일구를 설치했다. 이 시계는 2009년 10월 30일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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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은 또 해와 별을 이용해 시간을 알 수 있는 일성정시의를 제작했다. 1438년에는 세종을 위해 전체 운행과 자동물시계를 결합한 옥루(玉漏)를 만들었으며, 이 해 종3품 대호군으로 승진했다. 1441년에는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했다. 또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수표(水標)를 제작했다. 이 공로로 정3품 상호군에 올랐다. 상호군은 도승지나 목사 직급이었다.

이처럼 잘 나가던 장영실은 1442년(세종 24년) 역사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해 3월 16일 세종실록. “대호군 장영실이 임금이 타는 가마 제작을 감독했는데 견실하지 못해 부러졌으므로 의금부에서 국문했다.” 임금이 타고 다니는 안여(수레)를 잘못 제작했다는 죄였다. 사헌부에서 “불경보다 더 큰 죄는 없다”며 처벌해야 한다고 주청했다. 그해 4월 27일 의금부에서 장영실에게 '곤장 100대'를 구형했고, 세종은 곤장 80대로 감형했다.

그해 5월 3일 장영실은 곤장 80대를 맞고 삭탈관직(削奪官職)된다. 이날 자 세종실록 내용. “세종이 장영실 등의 죄를 황희에게 의논하게 하니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이 사람 죄는 불경에 관계하니 마땅히 직첩을 회수하고 관장을 집행해야 합니다'고 하여 세종이 그대로 따랐다.” 이후 어디서 살다 죽었는지 장영실에 관한 기록이 없다. 세종이 내시 대신 옆에 둘 정도로 신임하고 아끼던 장영실이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잘못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다양한 음모설이 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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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소장은 장영실 미스터리와 관련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는 실책설이다. 가마 제막 책임을 맡은 장영실이 방심해서 부실 제작으로 파직된 것에 불과하다. 둘째는 음모설이다. 사대모화주의자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막기 위해 임금 가마에서 부품을 몇 개 빼내 부러지게 한 다음 장영실을 장형으로 죽게 하거나 관직에서 물러나게 했다는 설이다. 주로 드라마 작가들이 음모설이나 기획설 등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마지막으로 기획설은 경복궁 천문대 등을 빌미로 장영실을 명나라로 압송하라는 요구를 피하는 한편 훈민정음 반포 후 대량 인쇄한 활자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수레 사건을 계기로 장영실을 파직해서 다른 곳으로 보냈다는 시나리오다.”

2019년 12월 26일.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가 개봉됐다. 신분과 상관없이 실력만으로 인재를 발탁해서 과학 발전을 이룩한 세종과 장영실을 다룬 영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2020년 1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천문'을 관람했다. 이 자리에는 영화 '천문' 관계자와 기상청 직원들이 동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과의 환담에서 “세종대왕 시절은 우리 역사상 과학기술이 융성하던 시기”라면서 “그 주인공이자 관노이던 장영실을 발탁해서 종3품 벼슬을 내렸는데 안여 사건 이후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기록이 사라져 그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 했다”고 남다른 관심을 표명했다.

장영실은 무덤이 없다. 다만 충남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야산에 추모비와 가묘가 있다. 아산 장씨 시조 장서의 묘 아래에 1984년 아산 장씨 문중에서 장영실 추모비를 세우고 가묘를 조성했다. 아산시에는 장영실과학관이 있다. 2011년 7월 개관했다. 1층은 어린이과학관·공작실 등이고 2층이 장영실과학관이다. 부산 동래구도 2003년 장영실 과학동산을 조성했다. 장영실의 위대한 과학기술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조선의 하늘을 만든 장영실. 그는 하늘의 과학별이 돼 오늘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