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콘솔 게임에 대한 관심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 61조원 규모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국내서는 '가정용 게임기'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일부 게이머층만 관심을 갖는 영역이었다. 과거 컴퓨터와 콘솔이 국내에 도입·확산되던 시절, 컴퓨터에는 '교육용'이란 수식어가 붙고 콘솔에는 '게임기'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보급에서 명암이 갈린 영향이다. 국내 게임산업은 이용자층이 많은 PC 온라인 위주로 발전했다. 현재까지도 가정에 콘솔을 들여놓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지속된다. 우스개소리로 유부남 구매자들 사이에 '공기청정기'라고 속이고 들여놓으라는 팁아닌 팁이 공유되는가 하면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광고까지 나왔다. 그만큼 콘솔 게임에 대한 잠재 수요가 높다는 얘기다.
콘솔은 TV와 연결해 게임을 즐기는 게임기다. 큰 화면 덕에 몰입감이 높고 패드로 조작해 시뮬레이션보다는 액션, 어드벤처, 역할수행게임에 잘 어울린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MS) '엑스박스', 닌텐도 '스위치'가 하드웨어 시장을 분할하고 있다. 이외 텐센트, 퀄컴 등이 새 콘솔을 개발 중이다. 중소 기기도 다수 존재한다.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콘솔 게임 매출 규모는 6946억원으로 전체 시장에서 4.5%를 차지한다. 모바일(49.7%), PC(44%)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매출 성장률은 31.4%로 전체 플랫폼 중 가장 높다. 2016년 2627억원에서 3년 만에 164% 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콘솔 게임 매출이 매해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해 2022년에는 1조3541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게임 시장은 5G급 인터넷 환경, PC방 문화 등에 힘입어 모바일과 PC게임 시장 규모가 절대적이지만 해외에서는 모바일 다음으로 큰 시장이 콘솔이다. 전체 게임플랫폼 중 4분의 1을 콘솔이 점유한다. 지난해 세계 콘솔 게임시장 규모는 61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9년에 비해 19% 성장한 수치다. 작년 말 차세대 콘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5(PS5)와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시리즈 X/S(XSX)가 출시됐다. 닌텐도 스위치(NSW) 수요도 높아 게임 타이틀 판매가 지속 늘어날 전망이다.
콘솔은 북미, 유럽 등 이른바 '질 좋은 이용자'가 많이 포진하는 국가에서 영향력이 크다. 북미에서 콘솔 비중은 38.4%로 전체 플랫폼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유럽에서도 37.5%로 가장 널리 이용되는 플랫폼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콘솔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해외 시장 공략 필요성도 커지면서 국내 게임사도 콘솔 게임 개발에 적극적이다. 중국 중심에서 벗어나 미국, 유럽에 진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콘솔 게임을 선택한 것이다.
콘솔 게임은 높은 개발력을 요구한다. '게임 개발의 꽃'으로 불린다. 회사 기술력을 평가받는다. 흔히 말하는 AAA급 게임은 콘솔 대작 게임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각 기기에 최적화하는 기술과 경험이 중요하다. 여기에 유려한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이 더해진다. 고급 개발자와 핵심 기술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이유다.
콘솔 개발자나 게임사는 '고티'를 목표로 삼다. 고티는 '올해의 게임(GOTY)'을 일컫는 말로 해외의 '대한민국 게임 대상' 격이다. 온·오프라인 매체가 그 해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게임에 수여하는 상을 통칭한다. 세계 게임이 격돌해 누가 잘 만든 게임인가를 겨룬다. 가장 많이 선정된 최다 고티를 그 해 최고의 게임으로 인정한다. 콘솔 게임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콘솔 게임 시장은 최근 새로운 변화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패키지 형태로 팔리던 콘솔 게임이 디지털다운로드(DL)판매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재 콘솔 게임 시장은 기존부터 유지되고 있는 패키지 유통방식과 콘솔 제조사 자체 스토어를 통한 다운로드 판매가 혼재돼 있다. 소규모 게임은 DL만 판매하기도 한다. 소니의 작년 DL 판매 비율은 70%를 넘어섰다. DL 수요가 많아지면서 물리 디스크가 없는 DL 전용 기기도 판매된다.
DL 판매방식 확대로 더 많은 게임이 콘솔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게임사가 국가별로 유통망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해결됐다. 이용자도 쉽고 빠르게 게임을 내려받아 즐길 수 있다. DL 소비가 높은 콘솔 계정은 다른 플랫폼으로 이전하기 힘들어 생태계 록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DL은 패키지와 달리 중고거래를 할 수 없다. 실물이 없어 출시 후 시간이 지나면 50% 이상 할인해 판매해 지속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떨이 판매와 다름없는 가격이어도 게임사에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 중고 판매보다 수익성이 좋다.
다만 패키지 소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니아와 중고 판매를 위해서 패키지 구입을 선호하는 이들이 남아있어 완전한 DL로 전환은 당장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타이틀 중고 판매 제한을 시도했다가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레고 재테크처럼 고전 게임 패키지가 비싼 값으로 팔리는 일도 있다.
최근 소니가 구모델인 PS3, PS VITA, PSP 다운로드 스토어를 폐쇄하기로 했다가 이용자 반발로 철회한 것처럼 다운로드만 믿고 있다가는 플랫폼사 상황에 따라 다시 내려받을 수 없는 게임도 생겨날 수 있다.
영상 콘텐츠와의 결합도 콘솔 시장의 새로운 추세다. 콘솔 기기는 게임뿐 아니라 영상 콘텐츠 소비에도 사용돼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튜브나 트위치, OTT를 지원하면서 거실 속 홈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상당수 콘솔이 애플티비, 유튜브, 넷플릭스, 훌루, 피콕, 스포티파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디즈니+, 트위치, 와챠, HBO MAX 등을 지원한다. 돌비비전,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해 몰입감을 높인다. PC 모니터나 모바일 디바이스보다 넓은 화면으로 즐길 수 있다. 제조사는 콘솔이 홈엔터테인먼트 기기로서 거실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AAA급 게임과 영상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는 이점이 더해져 현재 차세대 콘솔 기기는 수요가 높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 제품을 구매해 비싼 값에 되파는 이른바 '되팔렘(리셀러)'이 기승을 부린다. PS5는 블루레이 디스크 드라이브가 있는 기본 PS5 가격은 62만8000원, 성능은 같고 디스크 드라이브가 없는 디지털 에디션은 49만8000원이다. 되팔렘은 기본 PS5를 90만∼95만원에 판매한다. 정가의 1.5배 수준이다. 유통업계는 판매를 추첨제로 진행하는 등 여러 수단을 통해 실수요자에게 제품이 공급되게끔 노력 중이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