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망은 공짜가 아니라는 원칙. '망의 유상성'을 판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망자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그에 상응하는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하고, 통신시장 효율성 증대와 인터넷망 고도화를 지속하는 기본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조영훈 SK브로드밴드 커뮤니케이션추진그룹장은 넷플릭스를 상대로한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승소 의미에 대해 이같이 정의했다.
조 그룹장은 소송과정에서 실무 대응을 총괄했다. 법무법인 세종과 긴밀한 협력을 토대로 통신정책, 네트워크 경제학, 정보통신공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법률 검토와 학계 자문을 거쳐 치밀한 전략 수립을 주도하며 승소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그룹장은 “1심 판결로 아직 끝난 게 아니다”면서도 “통신사업자로서 망이라는 핵심 자산과 비즈니스 모델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글로벌CP와 소송에 확신을 갖고 나설 수 있었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그는 “인터넷 망이란 자원은 어떤 이들이 이용하는 만큼의 대가를 부담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그 대가를 대신 부담하거나, 서로 부담하지 않으려 할 것이며 결국 황폐화될 수 있다”며 “산업혁명 초기 “공유지의 비극”이 4차 산업혁명 시대 “네트워크의 비극”이 되는 상황을 막고 싶었다“고 말했다.
'망의 유상성'을 입증하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 상법 내에 이미 존재하는 법률근거와 논리로 승부를 걸었다고 소개했다.
조 그룹장은 “전기통신사업법상 기간통신사업자는 자신이 조달한 자금에 이용자가 지불한 대가를 더한 재원으로 네트워크에 투자한다”며 “대가 부담에 예외는 없으며, 사회적 약자도 요금감면을 받을 뿐 무료는 아니며, 정부도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팩트와 논리를 외면하고 왜곡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시장과 법질서를 서면에 체계적으로 담아 재판부에 호소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덧붙였다.
1심 판결은 망의 유상성을 명확하게 인정하며, 통신의 양면시장 속성에 대해서도 명확한 법적 판단을 얻은 것이라고 재차 의미를 부여했다.
조 그룹장은 “재판부는 상인의 행위는 영업을 위해 하는 것이고, 유상성이 내포된 영리성은 상행위의 본질 속성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며 “전기통신사업법과 상법을 연계해 망의 유상성을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넷망이 양면시장의 플랫폼이라는 법적 판단이 나온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한 의미”라며 “이제까지 글로벌CP가 정당하게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아, 통신사와 일반이용자, 다른CP에게 비용이 전가되며 발생한 통신시장의 자원배분 왜곡을 바로잡을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CP 간의 '역차별' 문제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조 그룹장은 “넷플릭스가 내지 않았던 사회적 부담은 결국 다른 CP가 부담해 왔다고 볼 수 있다”며 “망이용대가를 내는 다른 CP가 넷플릭스를 보조해주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는데, CP 시장의 불공정경쟁환경을 바로잡는데도 이번판결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그룹장은 일각에서 이번 판결이 모호하고, 승자가 없는 판결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데 대해서는 판결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조 그룹장은 “재판부는 원고인 넷플릭스의 협상 의무와 채무 확인에 대한 주장을 모두 각하 또는 기각했다”며 “민사재판의 속성상 SK브로드밴드에 대한 채무 규모는 판단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판결은 적극적으로 인터넷망의 유상성을 인정, CP와 협상 과정에서 망 이용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며 “넷플릭스가 망의 유상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2심에서는 그 가치를 따져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망 이용대가 청구소송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향후 대응방향을 제시했다.
조 그룹장은 오픈넷이 이번 판결을 망중립성을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법원은 인터넷에 접속해 유상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과 망중립성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법적으로 판단했다”며 “학문적으로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고 오픈넷의 주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오픈넷도 정부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픈넷은 인터넷은 약자를 위한 플랫폼이고, 친약자성을 보호하라는 것이 바로 망중립성이라고 주장한다”며 “그 주장이 인터넷망을 이용함에 있어서 불합리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개념이라면 동의하지만, 인터넷망을 이용함에 있어 유상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