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200일도 채 남지 않으면서 각 대선주자들의 차기 정부 정책 비전도 하나둘 구색을 갖추고 있다. 초반에는 대부분 정책 제안이 주요 정치 이슈인 부동산, 코로나19 상황 복구, 복지 등 분야에 집중됐지만, 점차 경제 비전과 신산업 육성 계획으로 범주가 넓어졌다. 많은 후보들이 반도체, 인공지능(AI), 미래차, 핀테크, 바이오,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만의 정책 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다. 여권 주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정책을 이어받아 이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정책을 구사한다면, 야권 주자들은 공공보다는 민간 역할을 강조하며 규제를 대폭 축소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국판 뉴딜 강화판, 데이터·그린·공정 성장 강조하는 여권 주자
여권에서 산업·경제 정책을 주도적으로 발표하는 대선 주자로 이낙연, 정세균 후보가 눈에 띈다. 행정 총괄을 담당하는 국무총리 경험이 있었던 만큼 해당 분야에서 다른 주자들보다 정책과 현장 행보에 적극적이다.
이낙연 후보는 신산업은 키우고 기존 제조업은 혁신을 통해 지속가능하게 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 신산업으로는 반도체·AI·미래차·배터리·로봇 5개 분야를 '코어테크'로 선정하고 모태펀드를 현재 7조원에서 10조원 수준으로 늘린다. 기술신용보증기금 자본금도 2배로 늘려 테크기업 성장을 지원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지원책으로는 미래차 취득세·개별소비세 완화, 고속도로 통행료 및 전기차 충전요금 개편 등을 계획 중이다.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에서는 글로벌 톱3 기업을 지정하고 연구개발(R&D) 비용 세제 혜택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여기에 기업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문화를 정착 시켜 지속가능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ESG 전환을 원하는 기업에는 투자재원 마련과 컨설팅을 지원한다는 복안이다.
정세균 후보는 'SK(Strong Korea)노믹스' 정책을 중심으로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연다는 목표다.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4차 산업혁명 도약을 위해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교육부는 폐지하고 인재혁신부를 신설할 예정이다. 여기에 신산업 관련 모든 규제를 사후규제 방식으로 전환해 원천기술확보와 기술보호 환경을 뒷받침하고 이를 전담할 지식재산처 신설도 제시했다.
현 정부의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확장하는 모습도 보인다. D.N.A(데이터, 네트워크, AI), 스마트공장, 스마트도시 등 디지털 그린 대전환을 추진해 디지털 중심 탄소제로 사회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또 충남경제자유구역 설치, 홍성·예산 모빌리티 스마트도시, 전북지역 탄소 소재 및 수소 자동차 육성처럼 지역별 맞춤 산업 정책도 선보이고 있다.
아직 경기지사직을 유지 중인 이재명 후보는 최근 들어 산업 경제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이 후보는 전환적 공정성장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있다. 기후위기, 에너지전환, 디지털전환의 시대를 극복하는 성장에서 불평등 역시 해소해야 한다는 기조다. 이를 위해 에너지, 디지털, 바이오 등 미래산업에 필요한 인프라에 정부주도 대대적 투자 단행을 예고했다. 기후에너지부, 대통력직속 우주산업전략본부, 데이터전담부서 설치 등의 정부 조직개편 의사도 내비쳤다.
규제는 균형의 원칙에 방점을 찍고 있다. 창의와 속도가 필요한 미래 산업에는 사후규제와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하는 반면, 공정경쟁을 위한 부분에는 규제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를 강화, 불공정 거래와 대중소 기업간 갑을 관계에 따른 불법행위를 징벌한다는 계획이다.
추미애 후보가 주목하는 분야는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전기차·조선 등이다. 이들 산업과 디지털 사회기반 구축으로 혁신 강국을 만든다는 그림이다. 특히 데이터의 개방과 공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공데이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두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공개할 방침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빅데이터가 모두 공유될 때 사회의 투명한 감시와 AI산업 발전도 가능하다고 기대했다.
◇규제 축소, 공공보다 민간 중심 경제 외치는 야권 주자
야권 주자들은 규제 축소와 함께 민간 중심의 경제 시스템 구축을 강조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확대된 공공일자리의 민간전환 등 일자리 개편을 중요한 숙제로 보고 있다. 유승민 후보의 디지털혁신인재 100만 정책도 같은 취지에서 나온 공약이다.
유 후보는 4차 산업혁명 기술 경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디지털혁신인재 확보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들을 100만명 양성해 향후 국가 미래 먹거리를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연장선으로 대학의 전공 및 정원제한과 같은 칸막이를 없애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밖에 혁신인재의 U턴, 신산업 투자 U턴, 디지털 트레이닝 교육시장 조성을 위해 디지털혁신부를 만들 계획이다.
제주지사 시절부터 전기차 등 신산업에 관심이 높았던 원희룡 후보는 사회 전반에 디지털 AI 문화 정착을 기획하고 있다. 정부부처, 공공기관, 지자체 등 모든 정부조직에 AI 육성 관련 전담조직을 두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규제 역시 민간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규제는 계속 만들어지는 반면, 기존 규제에 대한 해법이 나오지 않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폐법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정 규제가 이를 적용받는 현장에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글로벌 기준에도 맞지 않다면 규제를 소멸시킨다는 계획이다.
정치 입문이 늦은 윤석열 후보와 최재형 후보는 아직 경제 관련 정책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규제 개혁에는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던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반대하며 원전 생태계 복원, 탈원전 폐기 및 원전 산업 발전 등을 외치는 것도 특징이다.
윤 후보는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자유를 강조한다. 특히, 규제 해소를 통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의 창의성을 보장, 대기업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련해서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금융 지원 장벽을 해소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또 신산업 등장에 따른 기존산업과의 갈등 구조에는 정부가 적극 중재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최 후보는 규제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100일 동안 정부규제 신설과 강화를 동결한다는 계획이다. 이 기간 동안 안전, 환경, 소비자 보호와 같은 필수규제를 제외하고 모든 규제를 재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주요 대상은 AI, 블록체인, 클라우드, 메타버스 등 최근 각광받고 있는 ICT 융합 신산업이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 새로 만들거나 강화된 규제를 중심으로 이를 개편하고 신산업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 지원할 예정이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