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이 속 빈 강정 위기에 처했다. 반도체 특별법 핵심 가운데 하나인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조항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대폭 수정됐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등 일부 부처가 형평성 논란을 제기한 결과다. 미국·일본 등이 반도체 지원 정책으로 자국 산업을 키우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오히려 후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13일 법제사법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올린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하 국가첨단산업전략법)의 일부 문구를 수정해야 한다는 기재부 의견을 받아들였다. 기재부가 문제로 삼은 조항은 예타 관련 27조다. 27조 3항은 '전략산업위원회에서 3분의 2 찬성으로 의결하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 사업은 바로 예타 면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법사위 논의에서 '3분의 2 찬성'과 '국무회의 심의'는 삭제됐다. 예타 관련 조사를 '최대한 단축해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도 '신속하게 추진되도록 노력한다', 특화단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지원한다'에서 '지원할 수 있다'로 각각 바꿨다.
기재부는 이미 국가재정법 38조가 예타 면제의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조9000억원 규모의 소부장 육성사업과 6조3000억원 규모의 뉴딜투자사업 예타를 면제한 만큼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예타 면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안도걸 기재부 2차관은 “국가재정법은 예타 면제가 가능한 조항을 엄격하게 제한하지만 (기존) 첨단산업전략법 규정은 불특정한 유형의 사업을 망라해 예타 제도를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조정관도 기재부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특별법은 용두사미로 전락할 공산이 커졌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는 특히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산업이어서 신속한 예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가 요구한 각종 규제 해소도 어렵게 됐다. 신규화학물질 등록 등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의 규제로 반도체 특별법의 실효성이 사라졌다. 산업계는 “산업을 키워야 할 반도체 특별법이 오히려 반도체 규제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세계 반도체 패권 다툼에서 승기를 잡으려는 다른 국가와 대비된다. 미국, 일본, 유럽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세제 지원과 보조금을 투입한다. 국내는 산업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가 허약하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생산촉진법'(칩스 포 아메리카)에 따르면 미국 내 반도체 시설투자에 40%의 세액 공제가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10%대 수준이다. 이마저도 세액 공제 범위를 두고 여야와 정부 간 이견 다툼이 심했다.
미국의 각종 반도체 지원 정책은 기업 투자 유치를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삼성전자 포함, TSMC와 인텔이 미국 생산 거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도 보조금 지원에 나서면서 반도체 기업 유치에 혈안이다. 반면 국내는 해외 기업 유치는 고사하고 기업 투자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최다현기자 da2109@etnews.com
기재부 "국가재정법에 예타 면제 규정 존재해 기존 법으로도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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