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이 메타버스 전장에 뛰어들었다.”
플랫폼·콘텐츠 기업이 선점 경쟁을 벌이는 메타버스 시장에 반도체 기업이라니. 자연스레 반도체 기업과 메타버스 상관관계에 의문을 갖게 된다. 지난달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퀄컴 스냅드래곤 테크서밋 2021'에서 퀄컴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줬다. “반도체 칩셋(퀄컴 스냅드래곤)이 메타버스로 향하는 티켓”이라고.
이날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의 기조연설 도중 메타(옛 페이스북)가 깜짝 등장했다. 아몬 CEO는 앤드류 보즈워스 메타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가상현실 플랫폼 '호라이즌'을 통해 대화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두 인물을 닮은 아바타가 양사의 메타버스 협력 방안과 시장 전망을 논의했다. 두 사람은 스마트폰 다음으로 가상·증강현실(VR·AR)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부상할 것이며, 이것이 메타버스의 시작이라는데 공감했다. 퀄컴은 이미 수년 동안 메타버스에서 메타와 협력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메타버스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시점부터 투자와 시장 공략 준비를 마쳤다는 것이다.
실제 이용자가 느끼는 메타버스 근간에는 스냅드래곤 같은 반도체가 있다. 메타버스 애플리케이션(앱)을 가동할 스마트폰도 반도체로 움직인다. 스마트 글래스·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등 각종 VR·AR 기기를 제어할 때도 반도체가 필수다. 메타버스를 구현하려면 대규모 데이터 통신과 처리가 필요하다. 이를 담당할 데이터센터, 서버에도 반도체가 들어간다. 스마트폰이나 TV, 자동차 등 세상 만물을 움직이는 뿌리에 반도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스마트폰이 세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이었다면 이제는 메타버스가 세상을 잇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른다.
메타버스 시장을 공략할 퀄컴 승부수는 세가지다. 첫째는 2018년 세계 최초로 확장현실(XR) 전용칩인 스냅드래곤 XR1 플랫폼이다. 1년 뒤 XR2까지 출시했다. 세계 50여개 이상 가상·증강현실(VR·AR) 기기가 스냅드래곤 XR 칩을 채택했다.
두 번째는 AR 플랫폼 '스냅드래곤 스페이스'다. 개발자가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앱)에 AR 기능을 구현하도록 돕는 도구다. XR칩이 하드웨어 생태계를 노린다면 스냅드래곤 스페이스는 소프트웨어(SW) 생태계 조성에 집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스냅드래곤 칩 자체가 메타버스 선점을 위한 퀄컴의 카드다.
하드웨어(HW)기업이 메타버스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전략은 '생태계 조성'이다. 보통 생태계가 아닌 '의존적' 생태계다. 다른 말로 '록인(Lock In)'이다.
퀄컴은 메타버스 세상을 이루는 각종 요소가 생태계를 만들 때 반드시 자사 칩셋의 도움을 받도록 유도한다. 가령 퀄컴의 스냅드래곤 스페이스를 통해 메타버스 환경을 조성하는 기업이 있다면 이들은 스냅드래곤 8 칩셋과 XR2 칩셋을 사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호환성에서 남다른 강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퀄컴 기반 메타버스 생태계가 확장될수록 스냅드래곤은 더욱 많은 기기에 탑재된다. 지금 수많은 스마트폰에 퀄컴 칩이 탑재된 것 같은 상황을 메타버스 생태계에서도 구현하는 것이 퀄컴 의도다.
엔비디아 역시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엔비디아는 메타버스 기업”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메타버스에 대한 자신감이 넘친다. 엔비디아도 퀄컴처럼 '엔비디아에 얽매인 메타버스 세상'을 꿈꾼다. 엔비디아가 메타버스 체스판에 올려둔 말도 퀄컴과 비슷하다.
엔비디아는 2020년 실시간 3차원(3D) 디자인 협업 플랫폼 '옴니버스' 오픈베타를 출시했다. 그래픽, 시뮬레이션, 인공지능(AI) 기술을 집대성한 3D 시뮬레이션 협업 툴이다.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메타버스)를 융합하는 사실적인 디자인을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목표다. 메타버스를 위한 3D 시뮬레이션 협업 플랫폼을 만든 것은 엔비디아가 처음이다.
퀄컴의 승부수가 최종사용자(엔드유저)를 위한 플랫폼이라면 엔비디아는 기업간거래(B2B) 쪽에 보다 신경 쓴다. 엔비디아 옴니버스를 활용하면 로보틱스, 자동차, 건축, 엔지니어링, 제조,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보다 손쉽게 협업이 가능하다. 시뮬레이션으로 가상과 현실 세계의 벽도 허물 수 있다. 옴니버스가 제공하는 협업 환경 자체가 B2B 시장에서는 메타버스다. 엔비디아는 다수 기업이 옴니버스 플랫폼에서 '일 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
엔비디아가 옴니버스 생태계 확장으로 얻고자 하는 것 역시 반도체 시장 발굴이다. 옴니버스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RTX에 기반을 둔 플랫폼이다. 옴니버스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엔비디아 GPU를 탑재한 컴퓨팅 환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퀄컴 스냅드래곤 스페이스처럼 엔비디아 옴니버스 생태계가 확장될수록 엔비디아 GPU가 많이 팔리는 구조다. 유응준 엔비디아코리아 대표는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더욱 빠르게 처리하고 저장하는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엔비디아 GPU를 활용하는 컴퓨팅 환경 확대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결국 메타버스는 반도체 기업에게도 새로운 시장이자 미래 먹거리다. 메타버스 시장 성장을 예고하는 동시에 생태계 조성에 힘쓰는 이유다. 메타버스가 활성화할수록 반도체 기업 수익도 늘어나는 구조를 만들려면는 생태계를 신속하게 구축하고 시장을 선점해야한다. 퀄컴과 엔비디아 전략이 꼭 맞아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록인'에 성공해야 메타버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앞서 퀄컴이 언급했듯 메타버스로 향하는 티켓을 누가 발행하느냐가 관건이다.
앞으로 메타버스 전쟁에 뛰어드는 기업은 우후죽순 늘어날 전망이다. 때로는 각축전을 펼치고 이해 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할 수도 있다. 새해 메타버스 전장이 달아오른다.
<퀄컴-엔비디아 메타버스 전략 비교>
업계 취합
<VR·AR 기기 출하량 전망>
(단위 : 만대)
자료 : 트렌드포스
<글로벌 가상현실 콘텐츠 매출 전망>
(단위 : 억달러)
자료 : 트렌드포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