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속에 자율주행 연구개발(R&D)용 라이다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이로 인해 레벨3 조건부 자율주행 대중화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 공급이 개선되더라도 특정 라이다 제조사 의존도가 높아 원활한 차량 출고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자율주행 R&D와 스마트시티 등에 사용되는 라이다 발주부터 납기까지 소요기간이 갑절 이상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기존 1~2개월에서 4~5개월로 늘어났다.
복수의 국내 라이다 유통업체는 라이다도 반도체가 필요한 전자장비여서 반도체 수급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양산차에 레이더, 카메라 기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추가하면 출고가 더 늦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양산차에 적용될 차량용 라이다도 비슷한 영향을 받는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상황이 올해 나아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불확실하다. 시장조사업체 IHS마켓은 반도체 수급난 해소 시점을 올해 말로 잡았다. 고성능 칩의 경우 내년에도 시장 수요보다 부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라이다 수요가 한 업체로 몰리고 있어 각 완성차 업체가 레벨3 자율주행차를 맛보기 형태로만 출시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 지난해 혼다는 준대형 세단 '레전드'에 프랑스 발레오 라이다 8대를 장착해 레벨3 자율주행을 구현한 뒤 자국에서 100대만 한정 판매했다. 최소 물량으로 시장에 기술력을 보여주고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갖기 위한 전략적 조치였다.
혼다에 이어 다른 업체도 첫 라이다 파트너로 발레오를 택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S-클래스에 발레오 라이다 탑재를 공식화했다. 올 4분기 레벨3 자율주행차 판매 계획을 밝힌 현대차 'G90'을 비롯해 BMW '7시리즈' 등도 발레오를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라이다 공급망을 다변화하겠지만 첫 차량에선 자동차 요구사양을 충족하고 신뢰성이 검증된 제품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발레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라이다를 양산차에 공급한 업체다. 2019년 아우디 A8에, 2021년 혼다 레전드에 탑재했다. 현재 라이다 탑재 차량의 99%가 발레오 제품을 쓴다.
프랑스 발레오 본사는 공급 우려를 묻는 전자신문 질의에 “반도체 부족에도 발레오는 대안을 찾아왔다”며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전과 달리 올해 라이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예정이라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발레오의 라이다 누적 생산량은 15만대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만 하더라도 지난해 판매량이 8만7064대에 달한다. 지난해 7212대가 팔린 현대차 G90의 연간 판매량 목표치는 2만대다. 발레오는 라이다 연간 생산능력은 밝히지 않았다.
라이다 수급난이 국내 라이다 스타트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완성차 제조사와 주요 부품사가 스타트업 제품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내 라이다 스타트업 대표는 “라이다 부족 현상이 생기면서 공급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고객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반도체가 대형 업체로 쏠려 스타트업의 상황이 좋지 않지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도록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 자율주행 시장 상황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