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2027년, 한 완성차 제조사가 2022년식 레벨3 조건부 자율주행차를 대상으로 소프트웨어(SW) 업데이트를 실시했다. 출시한 지 5년이 넘은 차량이지만 레벨4 완전 자율주행차로 거듭났다. 함께 이뤄진 열관리 SW 업데이트는 배터리 성능 저하로 줄어든 최대 주행거리를 보완했다.
◇車, 바퀴 달린 컴퓨터로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SW)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단순히 기계장치, 즉 하드웨어(HW)가 맞물려 구동하는 이동수단이 아닌 첨단 컴퓨터의 집합체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완성차 제조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SW 정의 차량(SDV)'에서는 스마트폰처럼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통한 성능 개선이 가능하다. 자동차 평균 수명이 15년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 편의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 기능이 다양화되고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전장부품도 증가했다. 이를 제어하는 전자제어장치(ECU)만 자동차 한 대당 70~100개에 달한다. 자동차 내 수많은 '미니 컴퓨터'가 들어있는 셈이다.
그동안 점진적으로 전장부품이 늘다 보니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은 크지 않았다. 완성차 제조사는 자동차 설계에 맞춰 기능별로 묶어 부품을 발주했고, 부품사가 기능 구현에 필요한 ECU를 각각 개발하는 식이었다.
문제는 각각의 ECU를 구동하는 운용체계(OS)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완성차 제조사의 성능 개선을 위한 SW 업데이트 제공이 힘들다. 이는 기존 자동차의 분산형 전기·전자(E/E) 아키텍처 한계로 꼽힌다.
변화 불씨를 지핀 건 테슬라다. 테슬라는 기존 완성차와 달리 하나의 OS와 중앙 집중형 E/E 아키텍처를 구현했다. 자체 개발한 칩 기반의 고성능 컴퓨터로 차량 전체를 제어한다.
테슬라는 현재 가장 고도화된 SDV를 구현한 업체다. OTA(Over The Air) 무선 SW 업데이트를 지원하는 게 장점이다.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기능 추가뿐 아니라 배터리 효율을 높이거나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는 게 가능하다.
다른 완성차 제조사도 이같은 장점 때문에 SDV 구현을 위한 SW 역량을 키워 OS를 개발하고, 자동차 E/E 아키텍처를 재구성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단계적으로 여러개 굵직한 ECU 기능을 도메인 컨트롤 유닛(DCU)으로 통합한다. 나아가 테슬라와 같은 중앙 집중형 E/E 아키텍처로 전환할 전망이다.
부품사도 SW 인력을 늘리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기존에는 HW와 SW를 묶어 여러 고객사에 납품할 수 있었으나 각사가 개발한 OS에 맞춰 SW를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성차 제조사가 관련 기능 설정값을 바꿀 수 있도록 통신채널도 열어줘야 한다.
향후 완성차 제조사와 부품사 간 역할 경계선도 화두가 될 전망이다. 부품사가 핵심 코드를 여전히 제공하겠지만 완성차가 SW 주도권을 잡으면 SW와 HW가 분리돼 부품사 수익성이 줄어들 수 있다.
◇OS 자체개발 나선 완성차…구글 손잡은 업체도
완성차 제조사들은 SW 중요성을 체감하고 자체 OS 개발에 나섰다. 현대차그룹은 콕핏 시스템에 'ccOS'를 적용하고 자율주행 구현에 필요한 SW도 자체 개발한다. 기술 구현에 필요한 HW는 외부에서 조달하되 SW는 내재화하겠다는 구상이다. SDV 구현을 위한 고성능 반도체는 엔비디아와 협력하지만 단계적으로 반도체까지 자체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대차그룹은 OTA 무선 SW 업데이트 대상을 기존 내비게이션, 인포테인먼트에서 주행 분야로 확대했다. 지난해 판매한 GV60부터는 하드웨어 제어기 SW 업데이트를 지원한다. 전기차 통합 제어 장치, 브레이크, 스티어링 휠, 서스펜션, 에어백 등에 대한 설정값을 바꿔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폭스바겐은 'vw.OS'를 지난해 출시한 차량 ID.3를 시작으로 적용했다. OTA 무선 SW 업데이트를 12주마다 지원해 차량을 최신 상태로 유지하고 고객의 이용 경험을 개선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MB.OS'를 2024년 출시하는 첫 차량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자율주행을 비롯한 자동차에 필요한 모든 SW를 내재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SW 개발인력을 7000명까지 늘렸다.
토요타도 '아린 OS' 기반 신차를 2025년 내놓는다. 타사와 구별되는 특징은 OS를 자사 차량뿐 아니라 제휴 관계에 있는 스바루 등 외부 업체에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SW 전문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이들과 달리 스마트폰 OS 강자인 구글과 협력하려는 업체도 있다. 스텔란티스, 혼다, 볼보, 제너럴모터스(GM), 르노-닛산 등이다.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를 일부 사용하거나 해당 OS와 더불어 자체 플랫폼을 개발해 통합하는 방식이다.
장대석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원은 “차량 내에 나눠져 있던 베이직 소프트웨어(BSW)를 통합하는 OS에 따라 업체별 경쟁력이 갈릴 전망”이라며 “완성차 제조사가 인포테인먼트, 자율주행 미들웨어, 인공지능(AI) 프레임워크, 보안, 센서 등 전 영역을 제어권을 가지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자동차 교체 주기 길어져…신사업 발굴 필요
OTA 무선 업데이트 지원 차량이 늘어 고도화된 유지보수가 가능해지면 자동차 교체 주기는 길어진다. 배터리 수명 문제가 있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배터리 리스 사업이 활성화되면 이러한 문제도 해소된다. 신흥 전기차 업체가 속속 등장하면서 경쟁이 심화돼 판매 감소 우려만으로 통합 OS 개발을 늦출 순 없는 상황이다.
각 사는 자동차 판매가 아닌 다른 수익화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무료 SW 업데이트와 별도로 고급 기능을 판매하거나 월 구독 방식으로 서비스하는 사업을 고려할 수 있다. 또 수집한 차량·운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차 보험·광고 사업에도 진출 가능하다. OS 기반 앱 마켓을 통한 수수료 사업, 테슬라가 계획하고 있는 유휴 시간을 활용한 로보택시 사업 등도 선택지에 놓여 있다.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