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의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발표. 한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전 국민이 힘을 모았다. 정부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독립의 승부처로 인식하고 과감하고 신속하게 대응 체제를 마련했다. 대한민국 소부장 산업은 흔들리지 않는 산업 강국 만들기의 출발점이다. 출발부터 늦어 부족했던 산업화 시대의 혁신과 지식 축적의 시간을 따라잡아야 한다. 디지털화, 친환경화,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이라는 새로운 변혁에 맞춰 주력산업 구조 개편과 신산업 성장이라는 과제의 해결은 소부장 산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조업 가치사슬에서 소부장의 기술력은 완제품 수준을 결정하고, 궁극적으로 국가의 제조업 경쟁력을 결정한다. 특히 완제품 조립생산 능력이 세계적으로 평준화됨에 따라 디지털화, 지능화, 친환경화, 고부가가치화된 소재·부품 개발과 생산 능력의 보유가 더욱 중요해지고 제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미래의 새로운 수요에 맞춰 주력산업이 진화하고, 신산업이 창출됨에 따라 미래형 소재·부품 기술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철강 산업의 수소환원제철기술, 자동차 산업의 자율주행 컨트롤러 관련 신소재·부품기술, 수소의 생산, 저장, 이동, 활용 관련 신소재·부품기술 등이 필수적인 미래 신소재·부품기술의 예시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소재·부품 정책은 1978년 대일무역적자(33억5000만달러) 대응을 위해 수입 다변화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2001년 부품소재특별법 제정과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를 활성화해서 부품·소재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소부장 생산은 3배(2001년 240조원→2017년 786조원), 수출은 5배(2001년 646억달러→2018년 3409억달러) 확대됐다. 무역수지는 2001년 9억달러 적자에서 2018년 1375억달러 흑자로 전환되는 성과를 올렸다. 이는 시장 규모가 크고 기술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범용 품목을 중심으로 양적 성장에 주력한 결과다.
하지만 기술개발과 생산단계의 단절,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모델 부재, 가치사슬에서 시장 규모가 작지만 필수적인 핵심기술 미확보라는 한계를 보였다. 2019년 일본과의 전체 무역적자 192억달러 중 소부장 부문 적자가 182억달러나 차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계기로 획기적이고 과감한 소부장 정책을 민간과 함께 신속하게 추진했다. 다행히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조치 6개월 전부터 소부장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준비해 왔다. 준비된 자에게 위기는 기회다. 정부는 △소부장 경쟁력 강화대책 발표(2019년 8월 5일) △수출규제 대응 추경예산 2732억원 확보(2019년 8월) △소부장경쟁력강화위원회 출범(2019년 10월) △2조1000억원의 소부장 특별회계 신설(2019년 12월) △소부장 특별법 전면 개정(2020년 5월) △소부장 2.0 전략 발표(2020년 7월) △소부장 특화단지 지정(2020년 10월) 등 범정부 및 민·관 합동으로 일련의 소부장 정책을 수립하고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해 오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 조치 이후 2년을 기준으로 일단 3개 품목에 의한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 불화수소 국내 생산 2배 이상 확대, 불화폴리이미드 대체소재 개발,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신규 수입처 확보라는 공급망 안정을 이룩했다. 그리고 소부장 산업 매출은 20.1%, 수출은 7.4% 늘었다. 매출 1조원 이상 중소·중견기업은 13개에서 31개로 대폭 확대됐다. 특히 수요·공급기업 간 연대협력 협의체 구성으로 공동 R&D, 국내 제품 구매, 설비 개방 등 성과와 함께 12개 대학 32개 공공연구소가 소부장 기술 이전 및 장비·인력 활용에 참여하는 등 자립적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소부장 정책이 추구하는 핵심 전략은 제조업 가치사슬에서 필수적이지만 오랫동안 소수기업이 전담해 온 분야에 과감히 도전해서 필수적인 전략적 가치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상기 분야는 수요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간 R&D, 엄격한 시험·인증, 막대한 투자가 필요해 매우 위험한 반면에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고 시장이 좁아 신규 진입이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민간이나 정부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기획 △R&D △시험 △생산 △구매에 걸쳐 '원료 개발→1차소재 개발→2차소재 제조→부품 제조→최종제품 생산'에 이르는 단계별 참여기관 간, 수요·공급기업 간, 민·관 간 연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소부장 산업과 수요산업 간 연대 및 협력은 자동차·조선·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력산업 구조개편 성공, 초격차 마련과 함께 바이오·수소산업 등 신산업 창출 및 성장의 열쇠가 될 것이다. 현재 소부장 협력모델 45개가 선정돼 원활히 추진하고 있다. 바로 이 협력모델 성공 및 정착 여부가 대한민국 소부장 산업,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 산업의 미래 경쟁력 관건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소부장 산업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한국 전자산업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 시기에 일본 전자산업을 추월할 수 있었다. 지금 디지털, 지능화, 친환경화, 융합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도약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그리고 미-중 패권경쟁 격화에 따라 초격차 만들기와 추월에 필요한 추가 시간을 벌어 주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산업에서 강력한 글로벌 수요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공급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 한국 소부장 기업에 도전 기회를 주고 있다.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 소부장 산업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강력한 후원자다. 하나 더. 최근 장기 투자가 필수인 소부장 산업에 대한 펀드의 중장기 투자가 활성화되고 있다. 소부장 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중장기 금융투자와 선순환하는 소부장 산업 생태계가 마련된다면 소부장 산업 발전에 필요한 축적 시간을 한층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부장 산업정책은 순조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앞으로 장기간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변화하는 대내외 환경에 따라 소부장 산업정책 방향은 맞는지, 정책 추진 속도는 적절한지,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맞춤형으로 마련됐는지 등을 매번 점검하면서 개선하고 보완해 나가야 한다. 소부장 산업은 흔들리지 않는 산업 강국 만들기의 출발점이자 완성점이기 때문이다.
성윤모 한국산업기술대학 이사장(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yunmosung@naver.com
<표>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산업 생산·수출·무역수지
자료: 산업통상자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