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간 만남은 양사 간 반도체 협력이 한층 강화될 것임을 시사한다.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려는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외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을 강화하려는 인텔이 삼성전자와 협력, 차세대 반도체 칩을 생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 반도체 시장 1·2위가 '적과의 동침'을 꾀할지 초미의 관심사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매출 기준, 세계 반도체 시장 1·2위를 다툰다. 지난해 승자는 823억달러 매출을 올린 삼성전자였다. 인텔은 매출 790억달러로 3년 만에 2위로 내려왔다.
반도체 '왕좌'를 두고 양사 간 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사업 영역이 다르다 보니 한 분야에서 마주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중앙처리장치(CPU) 중심이었던 인텔이 메모리 강자 삼성전자와 지금까지 긴밀히 협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지난해 3월 겔싱어 CEO가 '종합반도체기업(IDM) 2.0' 전략을 발표하자 상황은 반전됐다.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에 진입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TSMC에 이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에는 달갑지 않은 대목이다. 인텔이 천문학적인 파운드리 투자로 맹추격에 나서면서 삼성전자의 잠재적 경쟁사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인텔의 전략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었다. IDM 2.0 전략의 핵심 축 중 하나는 외부 파운드리 강화다. 인텔이 준비하는 자체 파운드리는 빨라야 2024년 본격 가동한다. 공백 기간 중에 TSMC와 삼성전자의 협업이 불가피하다. 실제 인텔이 던진 새 승부수 중 하나인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는 TSMC에서 위탁 생산한다. 삼성전자도 인텔 반도체 칩을 생산할 잠재적 파트너인 셈이다.
반도체 공급 부족과 반도체 기술 변화는 협력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현재 10나노 이하 첨단 미세 공정을 보유한 파운드리는 TSMC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인텔이 반도체 급증한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려면 공급망 다각화가 필수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글로벌 반도체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첨단 미세 공정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TSMC와의 협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 반도체(다이)를 결합하는 '칩렛' 기술도 파운드리 간 협업을 전제로 한다. 서로 다른 파운드리에서 양산한 다이를 결합, 반도체 미세화와 소형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인텔이 외부 파운드리를 강화하려는 이유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극단적으로 TSMC와 삼성 파운드리에서 각각 만든 반도체 다이를 인텔이 패키징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면서 “최근 삼성과 인텔, TSMC가 참여하는 UCIe 등 개방형 칩렛 생태계처럼 파운드리 경쟁사 간 협업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말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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