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노동계 "이참에 임금피크제 폐지" 들썩…기업 "경영여건 악화" 털썩

한국노총 '임금투쟁 카드 사용' 지침
현대차勞 "철폐" 포스코勞 "무효 소송"
정년보장형 한정 판결…확대 해석 경계
경제단체 '팩트체크' 설명회 잇달아 개최

[스페셜리포트]노동계 "이참에 임금피크제 폐지" 들썩…기업 "경영여건 악화" 털썩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계에서 '임금피크제 철회 주장'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올해 노사 최대 쟁점 중 하나로 부상할 전망이다. 노동조합이 이를 임금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 기업 부담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대외 악재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 임금인상 압박에 이어 임금피크제 폐지 요구까지 나오면서 기업 경영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 근거, 제도 폐지 요구 확산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이후 주요 기업 노조는 제도 폐지 주장을 공식화했거나 단체 활동을 준비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당일 사측에 임금피크제에 대한 회사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2014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삼성전자 역시 노조에서는 지난해부터 폐지를 요구해 온 상황이다. LG전자 사무직노조는 임금피크제 폐지가 필요하지만 단체 활동 방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단순 폐지보다는 최초 임금 삭감 연령을 높이거나 평균 임금 삭감률을 낮추는 등 임금피크제 조건을 노동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 노조는 최근 내부 공지를 통해 올해 단체교섭에서 임금피크제 철폐를 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년유지형뿐만 아니라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폐지까지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회가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 무효소송에 나선 상황이며, SK하이닉스 사무직 노조 역시 올해 임단협 사안에 임금피크제 폐지를 추가했다.

임금피크제 폐지를 주장하는 노동계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단협 시즌이 다가오면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된 데다 상급노조에서도 임금피크제 문제 지적과 함께 적극적으로 임금투쟁 카드로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최근 '임금피크제 관련 대법원 판결 대응방향' 지침을 산하 조직에 배포했다. 개별 사업장 임금피크제가 현행법에 위반된다고 판단되면 노조는 해당 조합원의 소송을 지원하거나 제도 적극 폐지·보완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노총 지침 등으로 노조의 임금피크제 철회나 무효화 주장이 전방위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단순히 폐지를 넘어서 올해 임금 투쟁 근거로 활용할 여지가 많아 산업 전반에 파장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임피제 반감?…정확한 정보전달 필요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정년제를 운영 중인 300인 이상 기업 52%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10~29인 기업은 24.1%, 30~99인 기업은 22.1%, 100~299인 기업은 36.9%가 운영 중이다.

주요 기업 절반 이상이 임금피크제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대법원 무효 판결과 노동계 폐지 움직임으로 기업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기업 문의에 개별 회신을 주는 한편 설명회, 세미나를 개최하며 정보 전달에 나섰다. 정확한 판결 의미 전달과 함께 노동계 폐지 혹은 소송 움직임에 대한 대응 논리 제공이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대법원 판결 이후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 임금은 왜 깎나'식의 단순한 주장이 확산되면서 임금피크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형성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이번 판결은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 중 20%도 채 안 되는 정년보장형에 한정된 것인데다 임금피크제 자체를 무효화하는 게 아니라 잘못 적용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 대법원은 판결에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행해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무효 판결을 내린 정년유지형 역시 앞서 언급한 기준에 부합하되 고령자 고용 안정,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목적이 정당하고 불이익 보전 조치가 이뤄졌다면 연령차별로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과거 정년이 58세였다가 60세까지 2년간 연장하면서 그 기간 동안 월급을 감액한 경우는 이번 판결에 영향이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2015년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 권고안을 마련해 의무화했고 민간에도 도입을 장려했는데 정부 권고를 충실히 따른 기업들은 이번 판결이 당혹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노사 갈등 뇌관되나…후속 판결 관심 집중

기업은 임금투쟁으로의 확전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주요 대기업은 최근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조와 상당한 갈등을 경험했다. 갈등이 완전히 봉합되기도 전에 임금피크제 이슈가 터지면서 경영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번 판결이 일부 기업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한정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덜었지만 폐지 목소리와 소송제기가 이어지면서 상황을 주시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임금피크제 관련 재판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한 다음 날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인정한 법원 1심 판결이 나왔다. 이번 사례는 정년 연장을 동반한 경우로 임금피크제 효력을 인정받았다. 정년유지형과 달리 정년연장형은 원칙적으로 고용유지 조치로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 반영됐다. 이어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이 공사를 상대로 낸 임금피크제 소송과 KDB산업은행 전·현직 직원이 낸 소송 역시 최근 두 개 판결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홍종선 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은 “임금피크제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도 고민해야 한다”면서 “일괄적인 연봉제가 만연한 상황에서 근본 해결을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