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플랫폼 시장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공정행위, 소비자 이익 침해 문제에 대해 지난 정부는 일종의 사전 규제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과 온라인플랫폼 이용자보호법 제정을 추진했다. 반면에 새 정부는 빠르게 변화하고 다양한 참여자를 연계하는 플랫폼 산업의 특성과 혁신을 통한 플랫폼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고려, 정부 주도의 일률적 규제 대신 자율규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플랫폼 정책협의체'를 구성하고 플랫폼 산업 중장기 정책을 논의하는 등 범정부적 역량을 결집해서 플랫폼 시장에서의 자율규제를 정책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반대로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법적 규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EU 의회는 7월 5일 글로벌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규정하고 불공정행위를 금지하는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과 불법·유해 콘텐츠를 제어하는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을 통과시켰다. 내년부터는 플랫폼 규제법안이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동향과 달리 한국이 디지털 플랫폼의 법적 규제 도입을 중단한 이유는 △글로벌 기업에 비하면 한국 플랫폼 기업은 영세하다는 점 △성급한 법적 규제가 플랫폼의 성장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 점 △해외 기업에 규제 적용이 어려워서 국내 기업에만 차별이 발생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또한 플랫폼이 혁신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국가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만 원래 규제는 타율적 개입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율규제라는 용어 자체가 형용 모순에 해당한다. 이처럼 자율규제 개념·설계·실행 모두가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플랫폼 자율규제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먼저 자율규제 개념을 보자. 자율규제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사업자 각자 또는 조직화한 집단이 스스로 구성원의 행위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불간섭, 사업자 스스로 또는 집단 구성원의 행위 기준 설정, 행위 기준 미준수에 대한 자율적 제재가 자율규제 구성 요소다.
통상 새로운 기술로 인해 혁신이 일어나면 정부는 첫째 혁신을 기존 이해관계나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적으로 간주하고 규제를 통해 혁신을 저해, 둘째 혁신에 대응해 기존 규제를 재검토해서 이를 제도권 내로 흡수, 셋째 혁신을 위해 규제를 개혁, 넷째 혁신 활성화를 위해 일정 기간 규제를 하지 않고 서비스 양상을 지켜보는 방법으로 대응한다.
엄격히 말하면 자율규제는 넷째 유형, 즉 정부의 법적 규제를 유예하는 전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법적 규제에 대안으로 논의되는 자율규제는 정부 개입 없는 순수한 의미의 자율규제일 수 없다. 플랫폼 법적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 플랫폼 자율규제는 정부와 공동 규제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공동 규제로서 자율규제 형식은 다음 몇 가지로 나뉜다. 첫째 사업자 자체 자율규범 제정과 실행이다. 보통 법규를 통해 해당 영역 행위자에게 추상적인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경우 이 의무를 기반으로 자체 행동강령을 규정하는 경우이다. 최근 기업별로 제정된 인공지능(AI) 윤리 헌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자율 규제기구에 의한 규범 제정과 실행이다. 자율규제를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거기에 규범 제정과 집행을 맡기는 방법이다. 좀 더 세분화하면 자율 규제기구의 법적 근거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민간으로만 구성하는 경우와 민·관이 합동으로 참여하는 경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국내 주요 인터넷 포털이 2009년에 설립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는 민간으로 구성돼 정보통신망법에 근거를 둔 자율 규제기구라 할 수 있다. 이 법 제44조의4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단체는 이용자를 보호하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 행동강령을 정해 시행할 수 있으며, 청소년 유해정보 등에 대해 모니터링 등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정해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자율규제 방향은 기존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자율규제기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정부가 자율규제기구에 직접 참여하는 민·관 합동 자율규제 기구로 갈 것인지 자율규제 기구 권한 등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방향이 정립되지 않았다.
이처럼 법적 근거를 두고 자율규제 기구를 통해 규범을 제정, 실행하는 방식은 자율규제 체계의 안전성과 견고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전기통신사업법은 네트워크 구축과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기간통신사업자 중심 법체계라는 점에서 부가통신사업자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 도입을 위해서는 통신사업 규제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오히려 인터넷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사업자와 플랫폼사업자, 최종 이용자의 관계를 규율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서 정보통신망법 이용자 보호 조항을 포함해 인터넷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과 이용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별도의 법체계를 고려할 필요도 있다. 한편 정부가 참여하는 경우 정부 의지대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 자율규제가 형해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최후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는 것 정도로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에 대한 자율규제 방향의 면밀한 설계를 통해 디지털 플랫폼의 혁신성이 저해되지 않으면서 불공정행위 규제나 이용자 보호 등의 부작용은 해소돼 혁신과 공정이 균형을 이루는 플랫폼 생태계가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dysylee@korea.ac.kr
◇이성엽 고려대 교수는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거쳐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2017년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부임했다. 2020년부터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직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행정 현장 경험과 법, 정보통신기술(ICT), 데이터 분야 지식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 꼽힌다.
민간·정부 공동규제로서의 자율규제 설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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