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법 족쇄 큰 고리를 끊으면서 '뉴삼성' 혁신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시장 불확실성과 경쟁 심화로 사업전략을 재구축하고 '시계제로'였던 내부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총수 리더십이 중요한 상황이다. 수년간 리더십 부재 속에 현상 유지에만 힘쓰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고 글로벌 기업으로서 지속성장 가능성을 대내외 표방할 시점이기도 하다.
◇반도체·스마트폰 초격차 실현
세계 반도체 산업은 대변혁의 시기다. 단순 시장 경제에서 벗어나 정치·외교·안보까지 얽히고설킨 상황이다.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전쟁 사이에서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칩4' 동맹과 미국 반도체 지원 플러스법안 발효 등은 삼성전자와 매우 밀접한 대외 변수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협력을 통한 실효성 있는 생존 전략을 구축해야할 시점이다. 복권 후 이 부회장 행보에 '세계의 눈'이 쏠리는 배경이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 비전'을 구체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지난 상반기 삼성전자는 '게임옵티마이징시스템(GOS)'으로 스마트폰 성능을 제한, 발열 문제를 해결하려한 것이 논란에 휩싸였다. 외부로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으로 스마트폰 판매량 축소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상반기 기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 위상을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지만 여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다. 애플뿐 아니라 '왕좌'를 뺏기 위해 맹추격 중인 중국도 따돌려야 한다. 독자적인 프리미엄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개발과 폴더블폰 대중화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삼성전자 전략이 이 부회장 리더십 회복 후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가 관건이다.
◇디스플레이·배터리 대규모 투자 기대
이 부회장은 2019년 10월 퀀텀닷(QD) 디스플레이 개발에 2025년까지 총 13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직접 밝혔다. 그러나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투자 집행액은 기대에 못 미친다.
이 부회장 사면으로 본격적인 QD 디스플레이와 8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투자 확대가 기대된다. 중국이 OLED 시장을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와 연구 개발 확대로 디스플레이 초격차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LG에너지솔루션·SK온과 차별화된 수익성 중심 성장 전략을 이어왔다. 외형 성장 대신 고부가 제품을 앞세워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LG에너지솔루션·SK온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데 반해 삼성 SDI는 시기적으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시장 투자가 경쟁사 대비 더디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미국이 자국 내 배터리 등 전기차 공급망 구축을 시도하는 만큼 이 부회장 사면 이후 미국 투자 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120조원 사내 유보금…M&A 전략 본격 가동
삼성은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신성장 동력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된다. 미래 먹거리가 분명해야 삼성의 위상을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방법론으로 손꼽히는 것이 기업 인수합병(M&A)이다. 삼성전자 역시 120조원에 달하는 사내 유보금이 있는만큼 'M&A 총알'은 충분하다.
관건은 의사 결정 시점이다. M&A는 기업의 중대사다. 총수 부재 상황에서는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웠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형 M&A를 예고한 바 있다. 한종희 DX부문장 (부회장)은 지난 1월 M&A 계획에 대해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상당수의 후보군을 추린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복권으로 M&A 의사결정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반도체 분야가 후보로 지목됐다. 최근에는 경쟁당국 승인 문제 등으로 해외 M&A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주력 분야 외에 바이오나 미래차, 로봇 등 신성장 분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유망·알짜 기업 인수도 배제할 수 없다.
◇내부 경영 강화...컨트롤타워 재정립
이 부회장을 따라다니던 '취업제한' 족쇄는 외부는 물론 내부 경영활동에도 제약을 가져왔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을 문제 삼았다. 이번 복권으로 제약이 풀리면서 내부 리더십 재정립과 조직재편 등 내치(內治)에 힘쓸 여건이 갖춰졌다.
핵심은 삼성의 '컨트롤타워 부활' 여부다. 삼성은 2017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뒤 사업지원(삼성전자), 금융 경쟁력 제고(삼성생명), 설계·조달·시공(ECP)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3개 태스크포스(TF) 체제로 운영 중이다. 60개 계열사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이 발 빠른 경영지원을 제공할 컨트롤타워 하나 없다는 우려가 지속됐다.
이 부회장 복권을 계기로 컨트롤타워 재정립 목소리가 힘을 받을 수 있다. 계열사 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지금의 TF체제가 아닌 컨트롤타워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과거 컨트롤타워였던 구조조정본부나 미전실 역할과 형태를 답습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리'에 목적을 둔 조직보다는 민첩한 의사결정과 계열사간 시너지를 위한 슬림한 조직으로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 리더십 강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삼성 지배 구조는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연결 고리로 이뤄져 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9%를 보유하고 이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이 가운데 그룹 주력인 삼성전자 지분은 1.63%에 불과하다. 지배구조 상 '약한 고리'가 존재한다. 탄탄한 지배력 유지를 위한 거버넌스 개편 움직임이 예상되는 이유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