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 취임하면서 언급한 말이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마주한 현실은 엄중하다. 경기침체에도 굳건했던 이유는 반도체와 세트(가전·모바일) 두 축이 상호 보완하며 실적을 방어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두 축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과감한 혁신과 투자 없는 '뉴 삼성'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기존 패러다임을 뒤엎는 강도 높은 변화 요구에 직면한 이재용 회장의 뉴 삼성 과제를 5회에 걸쳐 진단한다.
<1> 패러다임 전환 절실한 스마트폰·가전
<2> 속도 급한 파운드리
<3> 바이오, 위탁 넘어 신약으로
<4> '플랜B' 필요한 배터리·디스플레이
<5> 초일류기업 열쇠, 조직혁신
삼성전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유지하지만 애플 추격으로 위기감이 커졌다. 갤럭시 안방인 국내에서도 부진이 예상된다. 스마트폰 주요 소비층인 MZ세대의 아이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다. 시장분석업체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인터넷트래픽을 기반으로 측정한 삼성의 3분기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7월 63.98%, 8월 59.47%, 9월 58.38%로 연이어 감소했다. 반면에 애플 점유율은 7월 29.45%, 8월 32.97%, 9월 34.1%로 상승했다.
아이폰 쏠림 현상은 10대와 20대에서 뚜렷하다.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30, 40대가 돼서도 아이폰을 사용하는 '록인'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MZ세대 아이폰 선호도가 높은 이유는 프리미엄, 즉 '자기효능감'이 크기 때문”이라면서 “10대와 20대는 소속감도 중시해 능력을 내세울 수 있는 브랜드 프리미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폴더블을 통해 내세우는 신규 폼팩터나 S펜 고도화 등 기술 혁신만으로 아이폰과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삼성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만큼 최근 MZ세대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패션·주얼리 브랜드와 협업, MZ세대의 선호도가 높은 연예인을 활용한 제품 노출, 갤럭시 팬파티 등이 그 예다.
애플 iOS 생태계는 MZ세대가 선호하는 요인이다. iOS 생태계는 연결성을 강조한다. 아이폰 사용자는 아이패드, 애플워치, 아이팟 등 관련 기기를 연달아 구매한다. 폐쇄형 생태계 자체가 애플 사용자만이 가질 수 있는 프리미엄으로 평가된다. 삼성도 이에 대응해 '원(One) UI'를 통한 연결성 및 편의성 강화를 내세운다. 애플과 대비되는 개방형 생태계를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갤럭시를 활용하면 구글, MS, 메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다. 신 교수는 “애플의 iOS 생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MZ세대가 흥미를 가질 만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끌어와 갤럭시 생태계에 접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험난한 경쟁이 예상되지만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시장을 포기하고 중저가 시장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경우 브랜드 자체의 정체성이 무너질 뿐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특수를 타고 급성장한 삼성전자 가전·TV 사업도 수요 둔화와 경쟁 심화로 위기를 맞았다. 공급망 붕괴로 인한 원자재·물류비용 상승까지 겹치면서 고민이 깊다.
실제로 올해 3분기 삼성전자 생활가전(CE)과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문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67.1%나 감소했다. 수요 둔화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새로운 혁신 도구 발굴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하드웨어(HW) 중심에서 벗어나 '서비스' 영역으로 진화하면서 수요 맞춤형 신(新) 가전 발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전 시장은 HW 성능 상향평준화 속에서 서비스나 콘텐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전에 와이파이·사물인터넷(IoT) 기능을 탑재, 사용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기능을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츠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 가전 시장은 338억달러(약 42조94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2026년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한 764억원(약 92조1044억원)으로 전망된다. 양성현 광운대 교수는 “가전은 IoT,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 데이터 분석과 이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 기능이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6년 연속 시장 1위를 달리는 TV사업 역시 서비스·콘텐츠 중심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고화질·대화면 기반 프리미엄 전략으로 대응하지만 근본적으로 사용자 맞춤형 콘텐츠 추천과 엔터테인먼트, 교육 등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크린으로 진화가 필수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TV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면서 “TV 서비스 영역을 강화하고 소비자 요구를 선제 파악해 다양한 신가전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정예린기자 yesl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