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지향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인물 다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장 임기 1년을 앞두고 쉬어갈 법도 하다. 그런데도 2년간 치밀하게 준비해서 정보통신기술 연구개발(ICT R&D)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일 가장 효과적인 조직개편안을 마련했다며, 반드시 안착시키고 가겠다며 열변을 토한다.
약 1조6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관리하며 국가 ICT R&D를 지휘하는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은 새해 사업 구상에 한창이다.
전 원장은 내년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며 6세대(6G) 통신, 양자기술,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6대 전략기술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통해 반드시 핵심 기술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디지털전략 실현과 디지털인재 양성도 중요한 과제로 손꼽았다.
그는 새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가전쇼(CES) 2023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 프리뷰 리포트를 치밀하게 작성했다. 글로벌 트렌드로 떠오른 우주를 눈여겨볼 분야로 정하고 제대로 공부해 오겠다고 했다. 지난 2020년 취임 인터뷰에 이어, 전자신문 특별인터뷰를 통해 2년 만에 전 원장을 다시 만났다.
-CES 참가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참가 이유는.
▲CES는 가전을 넘어 정보통신기술(ICT)이 가야할 방향을 정해주는 행사가 됐다. CES는 20여년전 TV와 냉장고가 주가 되는 가전쇼에서 휴대폰이 메인이 되더니 드론, 자동차까지 들어왔다. 보통 사람이 접근하기 쉬운 기술이라면 가전(Electronics)으로 인식된다. ICT 융합 현장을 확인하고, 연구개발 과제와 혁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CES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IITP 차원에서도 프리뷰 리포트 등 준비를 마쳤다. CES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얻은 인사이트를 산업계에 전달할 것이다.
-CES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분야가 있나.
▲우주다. CES에서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우주다. 일부 직원은 우주와 관련해서 아직 키워드 수준이고 제대로 보여줄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우주를 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자동차가 전기차 시대를 맞이해 바퀴달린 컴퓨터가 되었듯이 일반인도 우주에 접근 가능한 시대가 왔다. 세계 주요 산업계가 우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하는지 확인하고 싶다.
-지난 1년간 기억에 가장 남는 일은.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캐나다 순방을 동행한 일이다. 대한민국 디지털전략의 밑바탕이 된 뉴욕구상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문가와 같이 준비하며 보람을 느꼈다. 캐나다 토론토대에 방문해 세계 인공지능(AI) 석학인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를 만났다. 당시 윤 대통령과 연구진 행사에서 토론토가 어떻게 세계 AI 메카가 됐는지 질문이 나왔는데, 힌튼 교수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토론토대는 수십년전 AI가 각광받다가 관심이 식었을 때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이와 같은 '연구 지속성'과 종교 인종 등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 '포용성',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자율적 연구 문화' 3요소를 핵심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채용 연계 프로그램 등 기업과 연계도 충실했다. AI 석학이 몸으로 느낀 것을 생생히 전달해줘서 전체적인 ICT R&D 전략 방향을 구상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새해 정부 예산이 확정됐다. 2023년 IITP 지원 예산 규모와 신규사업은.
▲새해 IITP 예산은 총 1조6633억원으로 올해 대비 826억원 증가했다. 전체 예산 중 기술개발 및 표준화에 1조1152억원, 인재양성 분야에 3316억원, 기반조성 및 사업화 사업이 1634억원 편성됐다. 신규 사업 중 주목할 분야는 '우주특화 소프트웨어(SW)' 분야다. 최근 기술패권 경쟁이 우주산업까지 확대되면서 관련 기술력 확보가 중요해졌다. 특히 누리호 다누리호 발사 성공을 계기로 국민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발사체, 발사통제 등 우주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제, 관리하기 위한 SW가 핵심기술로 등장함에 따라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초기시장 선점을 위한 양자기술 분야 중 비교적 수요가 명확한 센서 분야에서 원천기술개발을 시작한다. 북한 무인기 등이 충격을 주는 가운데, 국방무인이동체 사이버보안 기술 개발사업도 중요한 테마로 잡았다. AI 반도체 분야 부족한 인재양성을 위한 관련 AI 반도체 대학원 설립 지원 등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신규사업 이외에 전반적인 2023년 ICT R&D 예산·사업 운영 방향은.
▲IITP 관리예산은 2019년 1조600억원에서 2023년 1조6633억원으로 연평균 12%가량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새로운 경제성장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R&D 예산도 대폭 확대된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 지속적인 ICT R&D 예산 확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AI △AI 반도체 △5G·6G △양자 △메타버스 △사이버보안 6대 디지털 혁신기술(전략기술)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해서 기존 예산을 투입하고, 신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새해 세계적으로 양적완화 기조에서 벗어나면서 경제사정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춘궁기가 왔다고 해서 모내기할 벼를 베어서 밥을 지어먹으면 안된다. 풀뿌리라도 먹고 버티면서 미래를 위한 씨앗을 더 뿌려야하는 시기다.
-새해 신규예산 확보를 위한 ICT R&D 예타 주요 추진 방향은.
▲6세대(6G) 이동통신을 1번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애초에 1조원 규모로 크게 갈려고 준비했었는데, 연장선상이다. 6G 1차 예타를 통해 표준화 준비 등 상용화 전단계 예산을 확보했다. 2차 예타를 통해 이후 부분에 대한 예산을 중기 사업으로 구상했다. 규모나 시기의 문제이지,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며 예타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우주인터넷 시대를 열기 위한 저궤도 위성통신 예타를 추진한다. 차세대 지능형 AI 반도체도 중요하다. 특히 AI 반도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SW) 구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K-클라우드 전략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예타 통과가 반드시 중요하다.
-최근 ICT R&D 예타가 잘 통과되지 않는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예타에 대응 방향은.
▲과기정통부 기획조정실장 시절 사회간접자본(SOC) 예타를 심의하는 재정건전성위원회 정부위원으로 활동했다. 예타는 기본적으로 우선순위가 작용한다. 시급하거나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아니면 숙려기간을 주는 것이다. 예타는 떨어지면 끝인 게임이 아니라, 리뷰를 하면서 보완할 포인트를 지적해준다. 멈추지만 않으면 떨어지는건 문제가 아니다. 각 PM 들에게 적극적으로 예타에 도전하라고 했다. 실수할 수 있고, 꾸준히 도전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큐(대기열)에 있는 예타가 10개가 넘더라. 준비하고 차근차근 도전하면 언젠가는 사업의 중요성을 설득해 통과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준비를 해야 기회가 오면 붙잡을 수 있다.
-대한민국 디지털전략과 관련해 IITP 역할은.
▲디지털전략은 디지털이 중심이 돼 산업 변화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이네이블러'는 기술이다.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혁신을 일으키는 핵심이 기술이라는 인식하에 책임감을 갖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책무가 IITP에 주어져 있다. 디지털 인재양성도 중요하다. 100만 디지털 인재양성 예산·정책의 총괄지원 역할을 IITP가 수행한다. R&D는 궁극적으로 인력이 하는 일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인력양성과 R&D 사업이 효과적으로 선순환하며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디지털 관점에서 100만 인력양성을 지원할 것이다.
-2년전 취임 당시 전자신문과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ICT R&D 혁신 성과는.
▲2년 전에는 ICT R&D 혁신을 구상하면서 기술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IITP 원장 혼자 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었다. 제 미션은 사회 전체, 정부와 기업, 연구자가 효과적으로 R&D를 진행할 구조를 만들어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기술력과 인력 양성이 잘 돌도록 하는 작동기전을 만들어 놓는게 IITP 원장으로서 미션의 본질임을 깨닳았다. ICT R&D를 위한 조직이 어떻게 잘 돌아가고, 생태계를 조성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놓을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졌고, 이제 구상을 마쳤다. 최적화한 조직 개편안으로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
-조직개편안 방향은.
▲기존 IITP ICT R&D 업무에서 축적된 흐름이 있다. 우선 산업 트렌드와 수요를 가장 먼저 봐야 한다. 이후에는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예산 확보 이후에는 기획·평가관리를 효율화하고, 성과를 확산하는 프로세스가 기본이다. 기존에는 이 과정들 각각을 전담하는 조직이 각자의 역할을 했다. 이제 조만간 있을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각 사업별로 독립적으로 모든 플로우가 실행될 수 있도록 바꿀 것이다. ICT R&D의 머리에서 꼬리 부분까지 모든 주기를 1개의 팀이 일관적으로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예산, 법제, 인력양성 협력. 사후관리 총괄 등 기본 스탭부서는 그대로 남기고, 사업별로 일관적으로 기획에서 성과관리까지 원팀으로 진행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남은 임기 1년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난 2년간 준비한 조직개편을 직원들이 체화시킬 수 있도록 하고 싶다. 2년간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혹시모를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철저한 기록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중립성을 확보하며 준비했다. 치밀하게 준비한 조직개편인 만큼 남은 임기 동안 안착시키는데 주력할 것이다. 기획에서 평가까지 한 팀에서 안정적으로 하고, 그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직원들로서는 이 과정에서 개인의 전문성이 쌓일 것이다. 정책부터 기획 트렌드 분석 분야에도 AI를 도입해서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ICT R&D 프로세스가 관리되는 조직을 반드시 만들 것이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사진=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전성배 IITP원장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1년 체신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뛰어난 추진력을 바탕으로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과기정통부 등 30년간 공직에서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옛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대변인과 전파정책국장을, 과기정통부 출범 이후 통신정책국장과 기획조정실장 등 핵심 요직을 역임한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다. 2021년 1월 정보통신기획평가원장으로 부임, 30년간 축적한 ICT 분야 네트워크와 경험을 바탕으로 ICT R&D를 진두지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