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해 출범을 예고한 민간 모펀드에 대한 벤처투자업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금리 등 경기 불확실성 여파로 투자 심리가 크게 꺾인 상황에서 뚜렷한 민간자금 유인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세제혜택 등 민간의 추가 출자를 유도할 정책수단 역시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만큼 섣불리 수요 파악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2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위원회, 벤처캐피털협회 등은 이달 중 민간 모펀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해 민간 모펀드 조성을 위한 논의를 개시한다. TFT에서는 민간 모펀드 조성을 위한 제반 사항을 살피고, 펀딩 규모 등 수요 파악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에서는 이른 시일 내에 민간 모펀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마치고, 1호 모펀드 조성을 연내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벤처투자업계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기존에 시장에 투입된 벤처펀드와 큰 차이가 없어서다. 실제 이미 국내 투자시장에서 민간 모펀드가 20년째 운용되고 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가 운용하는 코리아IT펀드(KIF)가 대표 사례다. 이동통신 3사가 자금을 모아 2002년 처음 펀드를 조성했다. 첫 조성 이후 20년간 78개 자펀드가 KIF 자금을 받아 누적 4조7000억원을 투자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반도체성장펀드, 시스템반도체펀드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동 출자한 모펀드를 기반으로 하위 자펀드를 조성한다. 하위펀드 조성과정에서 정책자금으로 조성된 성장사다리펀드가 공동으로 출자해 투자규모를 키운다.
하나금융그룹이 모펀드 출자자로 참여한 '하나뉴딜국가대표성장펀드', 현대차 계열사의 '현대차그룹미래차성장펀드', 포스코 계열사들이 801억원을 출자한 '포스코신성장펀드'도 마찬가지 구조다.
정부가 도입 계획을 밝힌 민간 모펀드 역시 앞서 언급한 모펀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운용될 전망이다. 모펀드 재원은 순수 민간이 마련하지만 하위 자펀드 결성 과정에서 모태펀드 등 재정을 투입한다는 계획 역시 다르지 않다. 민간 모펀드를 '대규모재간접벤처투자조합'으로 규정해 세제혜택 등 특례를 제공한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마치 민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투자 재원이 생기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신성장 동력이 필요한 회사는 이미 유인책이 없더라도 자체적으로 재원을 모아 유망기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면서 “전폭적 세제 혜택이 있지 않고서야 지금 같은 고금리 상황에서 개별 대기업이나 산업계가 굳이 공동으로 기금을 모아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경기 불확실성과 고금리를 감내할 수준의 인센티브가 결국 민간 모펀드 흥행의 핵심 지표인 셈이다. 정부는 민간 모펀드 법인출자자에게 최대 8%를 세액공제하고, 개인투자자에게 출자금 10%를 소득공제해 주는 방향으로 세제혜택 제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공전을 거듭하는 국회는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차등의결권, 실리콘밸리식 벤처투자기법 등 투자활성화를 위해 앞서 도입을 시도한 각종 제도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세액공제 신설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사안이다. 조특법·세법 개정은 여야 대립이 더욱 첨예하다. 논의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당초 공제 목표치가 크게 줄어들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벤처투자시장 침체로 기존 벤처펀드 청산도 예측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자금조달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기존 방식과 뚜렷한 차이점을 주거나 제대로 된 유인책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수요예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