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반도체 불황 대처법

[ET톡]반도체 불황 대처법

“일부 고숙련 엔지니어의 정년을 없앴습니다. 촉탁직으로 계속 모시는 거죠. 경험과 노하우가 다르고, 제품 품질과 기술력을 좌우하니까 끝까지 함께하려 합니다.”

지난해 국내 한 반도체 소재·부품 기업은 60세 정년제를 대폭 수정했다. 실력 있는 엔지니어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줬다. 숙련된 '고참' 엔지니어가 젊은 인재를 교육, 양성하는 선순환 구조도 기대했다. 기술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경영철학에서 나온 조처였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R&D) 인력도 확대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시장이 침체 양상을 띠고 있다. 관련 기업은 모두 올해 최대 과제를 '생존'이라고 말한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몇몇 외국계 기업에서는 인력 감축 이야기도 나온다. 신규 채용은 일찌감치 중단됐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을 지키려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의 노력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반도체 시장은 분명한 '주기'(사이클)가 있다. 과거에는 2~3년 간격으로 부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변화무쌍하다. 정보기술(IT) 산업이 급변하고 대외 변수가 워낙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불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대유행, 미-중 갈등 등 복합 변수 때문에 예측하기가 더욱 어렵다.

시장 읽기는 한층 복잡해졌다. 그러나 70년 이상 이어 온 반도체 시장에 불변의 법칙은 있다. 시장 침체 후에는 반드시 회복기가 온다는 것이다. 첨예한 수요와 공급 매칭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지금 반도체 불황이 끝나는 시기를 이르면 올해 말로 본다. 메모리 재고가 소진되면서 수요가 증가할 시점으로 전망한다.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전방산업이 회복하면서 삼성전자와 TSMC, 인텔 파운드리가 본격 가동하는 2024~2025년 반도체 시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불황을 어떻게 견뎌 내느냐가 핵심이다. 단기 전략에만 과몰입해선 안 된다. 반도체 경기가 반등했을 때 다시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턴어라운드' 전략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일부 반도체 기업이 지금 R&D와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설비 투자를 단행하는 이유다. 내년 이후 반도체 경기 회복에 대응하려는 포석인 셈이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패권을 거머쥔 것도 경기 침체기에 강력한 혁신 투자를 한 결실이다. 반도체 성장기에 경쟁사와 맞서 싸울 체력과 기술을 미리 준비했기에 가능했다. 지금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과 소부장 회사에도 요구되는 전략이다. 어려울 때 혁신 기술을 얼마나 확보했냐가 앞으로의 기업 성패를 좌우한다.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R&D와 사람이 혁신을 주도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