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국방용 반도체를 위한 자체 산업 생태계 조성에 뛰어들었다. 국가 안보에 핵심이 되는 반도체의 아시아 지역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다. 미국 대표 반도체 기업인 인텔, 글로벌파운드리스(GF), 마이크론을 필두로 자국내 국방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최근 글로벌파운드리스 뉴욕 몰타주 공장을 국방 반도체 공급 업체로 선정했다. 항공우주와 방위 응용 분야에서 신뢰성 있는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인증을 부여했다. 글로벌파운드리스의 가장 미세한 반도체 공정인 12나노 핀펫 등 첨단 반도체를 미 국방부 육군·해군·공군·우주 안보 시스템에 사용한다. 글로벌파운드리스는 대표적인 미국 파운드리로 대만 UMC와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3~4위를 다투고 있다.
미 국방부는 앞서 인텔과도 손잡은 바 있다. 2021년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골자로 한 ‘종합반도체기업(IDM) 2.0’ 비전을 발표할 당시 인텔 파운드리가 국방 반도체 주요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지난 4월 인텔은 멀티칩패키지(MCP) 시제품을 미 국방부에 공급했다. MCP는 서로 다른 반도체 칩을 연결, 성능을 극대화한 최첨단 기술이다. 인텔 측은 “인텔과 미 국방부가 방위 산업 공급망을 보다 다양화하고 반도체 설계자산(IP)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마이크론과 협력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부터 미 국방부의 ‘신규 국방사업 이사회’에 유일하게 반도체 기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같은 국방 반도체 공급망 구축은 대만 등 아시아 의존도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현재 미국 국방 반도체 상당 부분은 대만 TSMC에서 공급 받기 때문이다. 미국에도 반도체 위탁생산업체가 있지만 첨단 공정에서는 뒤처져 있다. 전자전이나 무기 체계 첨단화를 위해 국방부가 직접 관리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 조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 대만 TSMC와 우리나라 삼성전자가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지만 반도체 공급 부족 시 안정적으로 국방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업계에서는 이들 기업이 수익을 고려, 국방처럼 특수 제품이 아닌 상용 반도체 생산에 집중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인텔·글로벌파운드리스·마이크론 등 자국 반도체 기업과 협력, 국방 반도체 생산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다만 미국이 국방 반도체 자립도를 높이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 회사 머레이힐그룹의 마이크 번스는 “인텔 등 미 국방부 무기 체계에 쓰이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미국 내 기업이 얼마나 빨리 TSMC를 따라 잡을지가 관건”이라며 “이는 몇년 걸릴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