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능력을 확대한다. AMD·엔비디아 등에서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와 진검승부에 나섰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HBM 생산능력을 내년 말까지 2배 확대하기로 하고, 주요 장비를 발주했다. 얇은 웨이퍼를 손상없이 절단하고 패키징까지 지원하는 웨이퍼서포팅시스템(WSS) 공급사로 도쿄일렉트론(TEL)과 수스마이크로테크(Suss Microtech)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은 장비를 천안 공장에 설치, HBM 출하를 늘릴 계획이다. 천안 공장은 패키징 등 반도체 후공정을 담당하는 곳이다. HBM은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향상시킨 제품이기 때문에 후공정 설비를 늘려야 출하를 확대할 수 있다. 증설에 들어가는 총 투자 금액은 1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AMD와 엔비디아 등에서 HBM 공급을 늘려 달라는 주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HBM에 대한 수요가 커져서다.
삼성은 현재 공급 중인 HBM2와 HBM2E뿐 아니라 하반기 양산을 예고한 8단 적층 HBM3, 또 최근 개발을 완료한 12단 HBM3E 등 차세대 제품을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삼성의 이번 투자가 주목되는 건 글로벌 반도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HBM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과 SK하이닉스와의 경쟁을 예고해서다.
삼성전자는 경쟁사 대비 HBM 대응이 늦다는 평가를 안팎에서 받아왔다. 일부 시장조사 통계에서도 SK하이닉스보다 점유율이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이달 메모리 반도체 기술개발을 총괄하는 D램개발실장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경계현 사장은 최근 임직원과의 대화에서 “삼성 HBM 점유율이 여전히 50% 이상”이라며 “HBM3, HBM3P가 내년에는 DS부문 이익 증가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도 HBM 증설을 추진 중에 있어 삼성과 SK하이닉스의 경쟁은 내년 더 불꽃 튈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약 1조원을 들여 이천공장 HBM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조원은 최소 투자고, 내년 삼성·하이닉스 양사 모두 투자 규모를 확대할 것이란 관측도 업계서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기업이 AI 서비스 확대를 예고해 저전력 고사양 메모리 반도체인 HBM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미래 수요를 충족하려면 향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모두 지금보다 10배 이상 캐파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진 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