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초실감미디어, 웹3.0 등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 퍼즐조각을 집약해 만들어내는 가상세계의 궁극적 지향점이 바로 메타버스입니다.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기업이 무게중심을 잡고 기술과 콘텐츠 선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유지상 메타버스 얼라이언스 의장은 2018년부터 지난해초까지 4년간 광운대 총장 임기를 마치고 '메타버스 전도사'로서 산업생태계 활성화에 매진하고 있다.
유 의장은 디지털방송 등 실감형 미디어 기술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다. 정보통신기술(ICT) 트렌드가 스마트폰, 메타버스, AI 등으로 변해왔으나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가상세계를 창출하는 메타버스 산업으로 향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유 의장은 개별 기술 완성도가 높아지는 2030~2040년이 돼야 진정한 메타버스 세계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메타버스가 만들어낼 경제·사회·문화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정부가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정하고, 규제개혁과 혁신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기업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콘텐츠 분야에 집중한다면 시장 선점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대학 총장까지 지낸 유 의장은 30년 학문의길을 걸었다. 최근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과 관련해서는 안타까움을 내비치며, 평가 방식 혁신을 주문했다.
다음은 유 의장과 일문일답.
- 광운대 총장을 역임하다 평교수로 돌아온 최근 근황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교육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총장 시절 광운대 교육·연구 질 제고와 대학 혁신을 위해 정신없이 보냈다. 강의를 나가고 있지만 그때에 비하면 여유가 있는 편이다. 지난해 7월 메타버스얼라이언스 의장을 맡았다. 디지털 시대 혁신기술 중 하나인 메타버스 개념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역할을 찾으며 '메타버스 전도사'로서 보람되게 보내고 있다.
-메타버스 전도사로서 메타버스얼라이언스 의장을 맡게 된 계기는.
▲메타버스얼라이언스는 2021년 5월 산·학·연·관이 합심해 메타버스 관련 혁신 기술과 서비스를 발굴하고, 산업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발족했다. 1020개가 넘는 기업과 기관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핵심이 증강·가상현실(AR·VR) 등 몰입형 서비스다. 전공이 디지털미디어 분야라서 20년 넘게 HD, 3D, UHD, VR, AR, 홀로그램 등 실감미디어를 포함하는 차세대 디지털미디어 관련 기술과 정책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장을 맡을 기회가 주어졌다.
-차세대 신산업에서 메타버스가 갖는 의의와 중요성은.
▲메타버스를 '현실 같은 가상세계'로 간단히 정의한다면, 다양한 서비스와 기술로 구성되기 때문에 매우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AI 기술은 메타버스와 융합돼 다양성을 더하고 고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게 한다. 생성형 AI와의 융합은 메타버스 산업에 큰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메타버스는 차세대 인터넷 기술인 웹 3.0의 몰입형 3D 인터페이스로 활용될 수 있다. 사용자가 디지털 영역에 진입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을 제공하거나 가상경제가 구현될 핵심 공간도 제공한다. AI와 초실감미디어, 분산형 웹 등 디지털 기술 퍼즐조각을 집약해 만들어내는 가상세계의 궁극적 지향점인 셈이다.
-메타버스가 바꾸게 될 생활과 산업의 변화는.
▲소설 스노 크래시 나오는 메타버스 세계인 '블랙선'과 영화 레디플레이원에 등장하는 '오아시스'를 보면, 메타버스의 퍼즐 조각이 완성된 후 우리 생활을 상상할 수 있다. 헤드셋(HMD)와 햅틱 장치 등을 착용하면 현실과 착각할 정도의 가상세계가 펼쳐진다. 메타버스 핵심은 몰입기술이다.아직 대중화는 안됐지만,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메타버스 서비스는 다양하다. 몰입형 VR 게임, 몰입형 피트니스, 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인체 해부도, 전기자동차 구성도, 가상의 전장 환경구축 등 교육·훈련용 VR 콘텐츠도 가능하다. AR 단말기를 이용한 AR 서비스도 산업 현장 등에 활용되고 있다. 버츄얼휴먼의 경우 이미 여러 광고 캐릭터로 이용되고 있다. AI와 융합된 후 진짜 사람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기술력도 좋아졌다. 디지털트윈은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산업 현장을 구성해 원격모니터링·관리 등 응용 분야가 넓어지고 있다. 완전한 메타버스는 한순간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개별 기술 퍼즐 조각이 진화하고 융합할 때마다 새로운 서비스 형태로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AI와 융합으로 그 시기가 당겨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메타버스를 잘 하려면.
▲정부는 2020년 12월 '가상융합경제 발전전략'과 2022년 1월 '메타버스 신산업 선도전략'을 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메타버스 활성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최근 열기가 상대적으로 식으면서 메타버스 분야 투자금도 줄어드는 등 방향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신산업이 도입될 때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규제다. 신산업에 대해서는 선 허용 후 규제, 자율규제 등의 요구가 반영될 필요가 있다. 메타와 애플, 구글, MS의 움직임을 보면, 메타버스 플랫폼과 솔루션, 콘텐츠 저작 툴 등은 글로벌 빅테크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기업은 잘하고 있는 콘텐츠 분야에 집중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 동향을 보면 VR용 게임, 혼합현실(MR)용 콘텐츠, 생성형 AI와 접목된 다양한 교육, 관광 콘텐츠, 버츄얼휴먼, 디지털트윈 등을 잘 준비하고 있다.
-메타버스 이외에, 우리나라가 집중 육성해야 할 산업 분야가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는 기회이자 위기다. 많은 분야에서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한다. 여기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디지털 혁신의 성공 여부에 따라 우리 위상도 결정될 수 있다. 우리가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장비 등 분야는 더욱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뒤처진 빅데이터, AI, AI 반도체, 클라우드, 자율주행자동차, 나노 기술, 웹3.0 등의 분야는 정부 주도로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집중적으로 육성해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말씀하신 산업 분야와 관련해 혁신, 융합을 통한 육성 아이디어가 있다면.
▲디지털 혁신의 핵심기술을 산업화할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메타버스, AI, 데이터, 시스템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유니콘 기업 30개, 데카콘 기업 10개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의 디지털 혁신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직접 지원보다는 지속 가능한 기업육성이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연 10조원(현재 5-6조 규모) 이상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전략을 실행한다면 공급능력, 자생력 강한 기업이 육성될 수 있다. 해외 시장 공략도 중요하다. 대부분 중소기업은 해외 진출 경험도 없고 어려움이 많다. 정부가 투자유치, 해외실증(PoC), 현지 사업화 등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전폭 지원해 세계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수준의 강소기업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인재 육성도 꼭 필요하다. 디지털 핵심역량을 갖춘 선도인력 100만 명 이상을 양성하고, 기존 산업의 전환 인력 1000만 명을 확보할 교육시스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연구현장에 오랫동안 몸담았다. 최근 R&D 예산 삭감 논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내년도 R&D 예산의 66.3%가 구조조정되고, 올해 예산의 16.6%인 5조2000억원 가량이 줄어든 25조9000억이 배정됐다. 지난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이 'R&D 이권 카르텔 타파'를 지시한 이후 시작된 일이다. 물론 연구비가 낭비되고 비효율적으로 집행되는 지적도 맞고, '과제 브로커'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두 달 사이에 비효율적인 R&D 예산을 효율적으로 전환, 집행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용된 방법이 사업비 일괄 삭감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처음부터 예산 삭감이 목표가 아니고, 효율적인 R&D 예산 집행을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나 아쉬움이 있다.
-R&D 예산 삭감 논쟁을 극복하고, 해결할 방안·아이디어가 있나.
▲PBS(Project based System) 문제점 등 R&D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여러 제도가 보완 수정돼야 한다. 나눠먹기식 관행도 없애야 하고, 조정의 시간도 필요하다. 핵심은 평가방식 개선이다. 매년 이맘때쯤 대부분 연구관리 기관에서는 다음 연도 연구비 예산 집행에 필요한 과제 기획 작업을 진행한다. 경험으로 비춰 보면, 과제 기획 작업에는 다수의 전문가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꼭 필요한 과제 주제와 내용을 정한다. 하지만, 대부분 과제는 사업비 규모와 무관하게 선정평가 과정이 1시간 이내로 이뤄진다. 1시간 만에 제안서부터,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개발 내용을 평가 위원이 다 이해하고 숙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연구책임자가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제안서의 변별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 연구책임자와 학연, 지연으로 엮여 있으면 평가 위원이 될 수가 없는데 그러다보니 역설적으로 비전문가가 평가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엄격한 평가를 위해서는 전문가가 평가해야 하고 더 많은 평가 시간이 배정돼야 한다. R&D 예산의 일정 부분은 평가 등의 과제 관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모든 평가 과정이 더욱 공정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진다면 연구비가 낭비되는 폐단을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과 관련해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과 정부는 혁신과 변화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생존을 위해 과감한 R&D 투자를 실천해야 한다. N 분의 1 나눠먹기식 R&D는 우리나라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는 기초과학 분야는 정부가 더 과감히, 성과가 빠르게 나올 수 있는 분야는 기업이 더 빠르게 투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으로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때 우리도 기술 패권의 경쟁에서 승리해 완전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은 유행을 타는 대상이 아니고, 또 유행을 타서도 안된다. 과학기술의 진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필요한 기초과학 기술과 원천기술 개발에 전력할 때 비로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계획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년까지 약 3년여 남았다. 남은 기간 가능할 때까지 제자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한민국 디지털 전환에 조금이라도 일조하기 위해 역할을 하고 싶다. 디지털 시대는 소프트웨어가 100%인 세상이다. 소프트웨어 인력양성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다. 또한, 메타버스얼라이언스를 통해 관련 분야 산업을 더욱 활성화하고, 민간주도의 산업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 이제는 과학기술이 정부 어느 한 부서의 전유물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모든 부처가 유기적인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같은 목적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유지상 의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퍼듀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전자를 거쳐 1997년부터 광운대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2018년부터 2022년초까지 4년간 광운대총장을 역임했다. 2005년 정보통신부가 주관한 3D 비전 2010 프로젝트의 리더로서 선진국 대비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는 작업에 참여했다. 2009년 세계최초로 3DTV 방송 상용화 TF 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UHDTV 방송 상용화 작업, 2005년에는 실감미디어산업협회(ARMI)를 재조직하고 부회장직을 맡았다. 2021년부터 메타버스얼라이언스 의장을 역임하고 있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