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TSMC와 일본의 밀월 관계가 본격 시작됐다. 일본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에 힘입은 TSMC는 일본에 첫 생산 공장을 개소, 현지 및 글로벌 반도체 수요에 대응한다.
TSMC는 24일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반도체 1공장 개소식을 개최했다. TSMC 구마모토 1공장은 약 21만㎡ 부지에 클린룸을 갖춘 팹(FAB) 동과 오피스동, 가스 저장시설로 구성됐다. 클린룸만 4만5000㎡ 규모로, 생산 능력은 12~28나노미터(㎚) 공정 제품 월 5만5000장 수준이다. 현재 일본 내 양산 가능한 최신 공정이 40㎚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첨단 공정에 상당한 진전을 이룬 셈이다. 공장은 상반기 공정 장비 반입과 설치 등을 거쳐 4분기께 양산 가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장 운영은 '일본첨단반도체제조(JASM)'가 맡는데, TSMC의 자회사인 동시에 소니·덴소 등 일본 기업이 출자에 참여했다.
구마모토 공장은 일본 현지 기업의 반도체 수요에 우선 대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소니 등 가전 제품 뿐 아니라 토요타 등 완성차 업체의 첨단 반도체 공급에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개소식에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그룹 회장,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 회장이 참석한 것도 이같은 수요·공급 협력 관계를 방증한다.
TSMC의 일본 내 첫 반도체 공장은 TSMC와 일본간 이해 관계가 맞아 생산된 결과물이다. TSMC는 반도체 생산 거점을 다변화해 공급망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고, 일본은 TSMC를 앞세워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을 대폭 키울 수 있다. 또한 TSMC 반도체 공장 가동을 통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등 후방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TSMC 역시 일본의 뛰어난 소부장 역량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는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일본은 이번 구마모토 공장 설비 투자의 절반에 가까운 4억760억엔(약 4조2000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TSMC는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구마모토 2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기에 7300억엔(약 6조50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두 공장 합계 보조금은 10조7000억원 규모다. 막대한 지원금을 투입하더라도 일본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TSMC 일본 2공장은 1공장보다 앞선 공정으로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또 대만과 일본의 반도체 동맹으로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특히 대만과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만큼, 구마모토 공장이 대만과 일본의 경제·안보 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중머우(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개소식에서 “일본 반도체 생산의 르네상스가 될 것”이라며 일본과 대만의 협력을 강조했다. 사이토 겐 경제산업상은 2공장에 대해 “첨단 반도체의 안정적인 공급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