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블랙웰'을 전격 공개하면서 메모리 업계도 분주해졌다. AI 칩의 핵심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HBM 업계 '큰손'이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을 독식하고 있어 이 회사 AI 칩에 채택될 경우 HBM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앞다퉈 엔비디아 공급을 추진하는 이유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는 메모리 업계 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마다 최신 HBM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삼성전자는 HBM3E 12H 실물을 처음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12단 적층 HBM이다. 용량도 36기가바이트(GB)를 지원, 업계 최대 용량을 자랑한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 중으로, 올해 상반기 양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삼성이 HBM3E 12H 모습을 이날 처음으로 드러낸 건 엔비디아에 자사 기술력을 적극 알리기 위한 포석이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물론 전시장을 찾은 많은 참관객이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해 관심을 보였다.
SK하이닉스도 전시장에 부스를 마련하고 HBM3E 12H(12단) 실물을 소개했다.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엔비디아에 HBM3를 공급해 온 역량을 강조하며, 삼성전자와 차별을 뒀다.
특히 이날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한다고 밝혀 조명을 받았다.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제품 공급이 이뤄질 예정이다. HBM3E을 대량 양산하는 건 SK하이닉스가 최초다.
SK하이닉스는 HBM3E에 효과적인 발열 제어를 위해 칩과 칩 사이에 액체 형태 보호재를 주입하는 어드밴스드 MR-MUF를 적용했다. 안정적인 양산성을 확보하는 핵심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류성수 SK하이닉스 부사장은 “그동안 축적해온 성공적인 HBM 비즈니스 경험을 토대로 고객관계를 탄탄히 하면서 '토털 AI 메모리 공급자'로서의 위상을 굳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HBM3E 양산 계획을 발표한 미국 마이크론은 엔비디아 H200 텐서 코어 SiP에 들어갈 HBM3E 8H를 전시하고 향후 로드맵을 소개했다. SK하이닉스를 바로 마주보고 부스를 마련, 경쟁 관계가 부각됐다.
메모리 3사가 모두 HBM3E에 혈안인 것은 차세대 엔비디아 AI 반도체에 HBM3E가 탑재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GPU(B200 두 개)와 CPU(그레이스)가 결합된 GB200이란 제품에는 최대 864GB 메모리가 적용된다. HBM3E 수주 시 대량 납품이 가능,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기조연설이 진행된 SAP 센터와 전시공간이 조성된 새너제이 컨벤션 센터는 1만6000여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리며 북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전시장에는 엔비디아 GPU를 활용 중인 다양한 AI 기업과 스타트업, 증강·가상현실(AR·VR) 기업, 콘텐츠, 클라우드, 유통 기업 등도 부스를 꾸려 참과객을 맞았다.
국내에서는 업스테이지와 래블업이 각각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솔라', 백엔드 AI 엔터프라이즈 등을 시연해 눈길을 끌었다.
새너제이(미국)=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