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 유치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면에, 한국은 기업 투자 부담을 완화하는 입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 시설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K-칩스법'은 올해 말 시효가 끝나지만 연장안은 자동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투자세액공제를 직접환급하는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사실상 무위로 끝났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은 설비투자 시 15%까지, 중소기업은 2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내년에도 혜택이 유지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K칩스법이 예정대로 올해 말 일몰될 경우 반도체 대기업의 설비투자 공제율은 기존 15%에서 8%로 줄어든다.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이 K칩스법 일몰을 2030년까지 6년 연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이후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양향자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K칩스법 일몰 연장을 골자로 발의한 조특법 개정안도 기재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21대 국회의 임기는 5월 29일까지로, 발의된 법안은 임기 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현재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라 임기 내 통과가 어렵다는 관측이다.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모두 용인 부지만 확정됐을뿐 본격적인 투자는 내년부터 이뤄진다”며 “세액공제 등 실질적 혜택이 기업에 가려면 법안 통과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향자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K-칩스법 시즌2로 불리는 총 6건의 패키지 법안도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2건만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됐을뿐, 나머지 법안은 국토교통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여기에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전략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세액공제를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고 이를 기업간 거래할 수 있게 하는 '한국판 IRA법'도 21대 국회 회기 내 처리가 사실상 불발된 상태다. 이는 현재 투자 세액공제가 법인세를 공제해주는 방식으로 한정돼 영업손실을 보는 기업은 당장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점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으로, 블랙홀처럼 투자를 흡수하고 있는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으나 이 역시 시행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한국은 선거와 대기업 특혜 논란에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도 아닌 세제 혜택과 같은 간접 지원마저 지지부진한 상황이지만 경쟁국들은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첨단산업 유치 결실을 거두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인텔에 직접 보조금 85억 달러, 대출 최대 110억 달러 등 총 195억 달러(약 26조원) 지원을 발표했다. 2022년 반도체지원법(칩스법) 통과 이후 최대 규모다. 일본 정부도 대만 TSMC에 사상 최대인 12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해 생산시설을 유치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