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나우라가 세계 반도체 장비 업계 상위 10위 안에 진입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 규제 속 중국이 자체적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성장한 결과다. 미국 규제가 풍선효과로 중국 반도체 장비 산업 발전을 촉진시키는 모습이다.
19일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나우라는 지난해 세계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매출액 기준 8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14위에서 무려 6단계나 상승했다.
나우라는 지난해 매출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2022년 대비 50.3% 늘어난 220억7945만위안(약 4조1372억)을 기록,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순이익도 전년 대비 65.7% 급증한 38억9906만위안(약 7306억)으로 집계됐다.
나우라는 지난달 낸 사업보고서를 통해 “300억위안(약 5조6214억원) 이상의 신규 계약을 체결했으며 계약 건수가 증가한 반면에 비용은 절감하고 효율성을 향상시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2022년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했다. 18나노미터(n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14nm 이하 로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같은 해 12월에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기업 36개를 수출통제 명단에 올렸다.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은 선단 공정 장비 도입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범용(레거시) 장비를 입도선매하는 등 대안 찾기에 나섰는데, 그 반사이익이 나우라에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나우라는 유도결합플라즈마(ICP), 축전결합플라즈마(CCP) 식각장비뿐만 아니라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에 사용하는 실리콘관통전극(TSV) 장비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물리기상증착(PVD), 화학기상증착(CVD), 에피택셜(EPI), 원자층박막증착(ALD), 저압화학증착(LPCVD), 배치·매엽 세정장비 등도 판매 중이다.
자국 반도체 제조사와 장비 국산화를 적극 추진한 효과로, 나우라는 지난해 기준 매출의 98.1%가 중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우라는 기술 내재화를 위한 공격적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은 44억953만위안(약 8262억원)으로 전년 대비 23.7% 증가했다. 누적 특허 출원건수는 7900여건, 라이선스 특허건수는 4700여건에 달한다. 임직원 1만2000여명 중 R&D 인력은 3656명으로 전년 대비 24.8% 늘렸다. 구체적으로 학사 1071명, 석사 2297명, 박사 139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나우라의 가장 큰 경쟁력은 가격으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한국 장비사들은 생각하지 못할 가격에 장비를 판매한다”며 “아직 기술이 주요 글로벌 업체에 미치지 못하지만 R&D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세메스(SEMES)는 순위가 기존 9위에서 10위로 한 단계 하락했다. 세메스는 지난해 매출이 2조5155억원으로 전년 대비 13.2% 감소했다. 삼성전자 자회사로 삼성전자 매출 비중이 89.2%로 의존도가 높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