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퀄컴 등 공급망 현지공략
韓 구심점 확보…협력안 마련해야
일본이 첨단 반도체 패키징 주도권을 쥐기 위한 칼을 빼들었다. 일본 소재 기업들이 미국 업체들과 손잡고 '소재·부품·장비' 협력 생태계를 구축한다. 첨단 패키징 기술 조기 상용화와 시장 선점을 위해 일본과 미국 간 연합체를 구성한 것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 대응이 주목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과 미국의 주요 반도체 소부장 기업이 참여하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연합체 'US-JOINT' 컨소시엄이 발족했다. 일본에서는 레조낙(옛 쇼와덴코) 주도로 MEC·얼박·나믹스·TOK·토와가, 미국은 애지머스·KLA·쿨리케앤소파·모지스레이크인터스트리 총 10개사가 참여했다.
일본은 소재 기업이 주를 이뤘으며, 미국은 소재(모지스레이크) 뿐 아니라 이를 평가하는 패키징 장비(쿨리케앤소파) 및 계측·검사(KLA), 패키징 서비스(애지머스) 기업이 가세했다.
US-JOINT는 공동으로 미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 유니언시티에 거점을 마련하고 하반기 클린룸 조성과 장비 설치를 진행할 계획이다. 내년 가동이 목표다.
컨소시엄은 일본 반도체 패키징 소부장 연합체의 '미국 확장판'이다. 지난 2021년 레조낙·아지노모토·다이닛폰인쇄(DNP)·파나소닉스마트팩토리솔루션 등 기업이 차세대 패키징 기술 협력을 위해 'JOINT2'를 창설했는데, 이 협력 저변을 미국까지 넓혔다.
이는 미국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엔비디아·퀄컴·AMD 등 세계적인 시스템 반도체 기업과 빅테크가 다수 포진해 있다. 첨단 패키징 시장의 핵심 고객사들로, 공급망과 시장을 좌우하는 주체다.
US-JOINT는 일본과 미국 패키징 기술의 부족한 부분을 상호보완하고 시너지를 내는 것이 표면적인 명분이지만, 미국 고객사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의도도 분명하다.
일본과 미국의 협력으로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한국과 격차가 벌어지고 진입 장벽까지 더 높아질 지 우려된다. 현재도 패키징 소재 분야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강한 데, 양국 기업 협력으로 한국과 같은 소부장 후발주자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 미국에 진출하려는 국내 반도체 제조사의 일본 소재 의존도도 높아질 공산이 크다. 일본과 미국이 협력해 만든 반도체 패키징 기술이 미국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을 선점하게 되면 삼성이나 SK하이닉스도 고스란히 이를 써야 한다. 엔비디아, 퀄컴, AMD 등 대형 반도체 업체들은 반도체 설계 단계서부터 공급망을 지정하고 있다. AI 메모리로 손꼽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이 대표적으로, 삼성은 HBM 접합소재인 NCF를 레조낙으로부터, SK는 MR-MUF를 나믹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강사윤 한국마이크로전자및패키징학회장은 “US-JOINT는 일본 소부장 기업이 미국과 협력,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첨단 패키징 시장에 대응하려는 접근”이라며 “한국 반도체 업계에는 위협 요인이다. 우리나라도 소부장 생태계의 구심점을 확보해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