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 24일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하며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나선 가운데 정부도 2030년까지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2029년까지 10년간 팹리스 연구개발에 1조원을 투자하고, 자동차·바이오·전력 등 5대 전략분야 공공 수요 창출, 1000억원 규모 팹리스 전용펀드 조성, 파운드리 시설 및 R&D 투자 세제 지원, 인력 양성 등을 골자로 했다. 과거 1998년과 2010년 세웠던 시스템반도체 강화 전략에 비해 반도체 생태계 뿌리를 이루는 팹리스 생태계 조성에 중점을 둔 것이 차별화됐다.
◇시스템반도체, 4차 산업혁명 수요 잠재력 커
반도체는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 6054억달러 가운데 20%(1267억 달러)를 차지할 만큼 수출 핵심 분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이 세계 전체 메모리 시장 60~70%를 차지할 만큼 중심이 됐다.
정부가 시스템반도체에 전력을 기울이는 데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 경제 주축인 반도체 수요가 우리 강점인 PC·모바일에서 자동차·로봇·에너지·바이오 등 전 산업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파운드리 시장과 합쳐 지난해 기준 2460억달러에 이른다. 반도체 시장 50~60%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다. 인텔(26.0%), 퀄컴(6.6%), 브로드컴(6.3%), 텍사스인스트루먼트(6.0%), 엔비디아(4.2%) AMD(2.4%) 등 미국 기업이 시장 70% 점유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 설비 없이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시장에서도 1위 퀄컴(163억달러), 2위 엔비디아(103억달러), 4위 AMD(60억달러), 6위 애플(54억달러) 등 미국 기업이 시장을 주도한다.
미국이 압도적 시장점유율 1위(70%)를 차지한 가운데, 대만·중국 등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자칫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국내 시장도 해외 제조사가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거대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동시 육성전략을 추진중이다. 대만 역시 팹리스와 파운드리간 유기적 협력으로 미디어텍(3위), 노바텍(9위) 등이 글로벌 팹리스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의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1%로 대기업을 제외하면 1% 미만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디스플레이구동칩(DDI), 휴대폰용 이미지센서(CIS) 등 국내 대기업 수요와 연계한 일부 품목에서만 팹리스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는 소품종 대량생산 체계인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다품종 맞춤형 제품, 세트업체 요구를 충족시킬 설계기술과 고급인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설계와 제조간 분업구조 등이 차별화돼 업계 투자와 함께 생태계 전반에 인프라 지원을 병행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자율주행차, 로봇, 사물인터넷(IoT) 가전 등 유망 신산업도 우수한 시스템반도체 제품이 양산돼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팹리스 생태계 조성에 '방점'
시스템반도체는 고가의 설계툴, 시제품 제작, 반도체 설계자산(IP) 로열티 등 일반 벤처 창업 대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팹리스 기업에 상당한 진입장벽이 됐다. 또 주요 수요처인 휴대폰·가전 등 주요 기업 해외이전으로 국내 시장이 줄면서 고사양과 레퍼런스를 요구하는 국내 수요 대기업 납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R&D 투자, 팹리스 전용펀드 구축, 수요기업 연계와 공공분야 수요창출, 인력양성 등 대책을 내놓은 것도 팹리스 업계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먼저 팹리스와 수요 대기업간 협력 플랫폼인 '얼라이언스2.0'이 만들어졌다. 정부는 얼라이언스를 통해 발굴된 유망 수요기술에 대해 연간 300억원 규모 R&D에 우선 반영할 계획이다.
발굴된 기술은 공공분야 수요처에 먼저 적용해 팹리스가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게 지원한다. 지능형 검침 인프라, 재난 감시와 범죄 예방용 CCTV, 5G 기반 전자 감독시스템, 스마트 고속도로 및 자율주행 도로 인프라 등 공공분야에 국내 팹리스가 개발한 5G 통신 모듈, 인공지능(AI) 정밀 측위반도체, 통신시스템 반도체 등을 사용하는 것을 지원할 방침이다.
아울러 전용펀드, 설계자산(IP) 플랫폼 구축, 설계 프로그램 공동 사용 등 팹리스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전주기적 지원체계도 갖춘다.
삼성전자가 133조원 투자를 발표하며 메모리 편중구조에서 벗어나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위해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는 것은 우리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 기회다. 정부는 이에 맞춰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상 상생 협력시 지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검토 중이다.
◇글로벌 수요처 연계·인력 유입 등 과제
정부가 이처럼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육성에 나섰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가장 큰 과제는 팹리스 기업이 만든 반도체가 민간 수요와 얼마나 연계될 지다.
시스템반도체는 수요 기업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뒷받침할 수요가 국내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최대 수요처인 자동차, 국방, 로봇, 바이오 등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과 연계가 필요하다. 글로벌 수요를 가진 대기업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고급 인력 수혈도 풀어야 할 과제다. 시스템반도체는 고급 설계 인력이 핵심 경쟁력이다. 반도체 학과 신설 등 인력 양성이 이뤄지지만 투자가 실적으로 연결되는데 오래 걸리는 팹리스 특성상 고급 인력이 팹리스로 향할만큼 매력이 크지 않다. 과감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한 팹리스행을 택할 인재는 많지 않다. 고급인력이 팹리스로 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생태계 선순환이 이뤄진다.
이경민 산업정책(세종)전문 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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