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CEO를 전격 교체했다.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된 인물은 팻 겔싱어다. 30년 간 인텔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인물이 EMC와 VM웨어를 거쳐 수장으로 복귀했다. 최근 제품 경쟁력 하락 이슈에 직면한 인텔이 체질 개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텔 신규 그래픽칩셋(GPU) 외주 생산 전략 변화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에도 영향이 있을지에 대해 국내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텔은 13일(현지시간) 팻 겔싱어 VM웨어 CEO를 인텔의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인텔 재무최고책임자(CFO) 출신인 밥 스완 CEO는 내달 15일을 기점으로 약 2년 만에 물러난다.
인텔 측은 “인텔이 맞이한 중요한 기술 변곡점에서, 인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과거 기술 혁신을 주도했던 팻 겔싱어가 차기 CEO로 적합하다고 결정했다”며 “중앙처리장치(CPU) 변화와 XPU 아키텍처 리더십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팻 겔싱어는 인텔 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1979년에 인텔에 입사한 그는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등 '무어의 법칙'을 만든 인텔 창립 삼인방 아래서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한 인물이다.
그는 지금의 인텔 코어, 제온 프로세서를 있기까지 다양한 기술을 연구했다. 또 현재 세계 IT 시장에서 범용으로 쓰이는 USB, 와이파이 규격 제정을 인텔이 주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2001년에는 인텔의 첫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고, 2009년 인텔의 수석부사장을 지냈다.
2009년 폴 오텔리니가 인텔 CEO를 맡던 시절, 팻 겔싱어는 유력한 인텔의 차기 CEO 후보로 거론됐지만 션 말로니가 선임되면서 인텔을 떠났다. 이후 그는 EMC, VM웨어 등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에서 각각 사장과 CEO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번에 팻 겔싱어가 인텔로 복귀를 하면서 회사 내에서는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무 담당자 출신 CEO에서 잔뼈 굵은 기술 엔지니어를 선임했다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세계 서버용 CPU 시장 90% 이상을 차지하는 '칩 거인' 인텔은 최근 갖은 위기론에 직면하고 있다.
AMD와 같은 신흥 CPU 강자가 등장해 시장점유율을 잠식하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IT기업이 인텔과 이별을 선언한 후 독자 칩을 개발하는 등 공고했던 시장 입지가 흔들리는 신호가 다수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최첨단 공정 기술로 주목받는 극자외선(EUV) 기술 생태계 조성을 주도한 기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파운드리 기업들이 10나노(㎚) 이하 EUV 기술 리더십을 가져가는 형국이 됐다. 이는 미국 각지에 거대한 생산 라인을 확보한 인텔이 외주 생산을 추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인텔의 파격적인 CEO 교체는 '기술 리더십' 회복을 위한 승부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한때 회사 최첨단 기술 개발을 총괄했던 기술 엔지니어를 회사에 불러들이면서, 다시 시장 지위를 회복하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한다.
아울러 국내 업계에서는 인텔의 위탁생산(파운드리) 전략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인텔은 내주 2020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셋 파운드리 생산 계획을 구체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이미 인텔은 차세대 GPU 'Xe HPG', 서버용 제품 'Xe HPC 폰테 베키오' 일부를 파운드리 회사에 맡기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 TSMC가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상황에서 CEO 교체가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되고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외주 생산을 시작으로 인텔의 체질 개선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TSMC 등 파운드리 업계에 수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