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장비 운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됐다. 규제 간소화를 통해 반도체 생산라인 핵심 장비를 조기에 사용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세계 파운드리 업계 경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시장 대응 속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반도체 공정에서 주로 쓰이는 고주파(RF) 장비 운용에 필요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게 핵심이다. RF 장비를 포함해 산업·과학·의료용 '전파응용설비'에 전파다중차폐시설을 철저히 갖춘 경우 및 스펙이 비슷한 장비를 들이거나 옮길 경우, 준공신고 외 다른 허가 절차 없이 신고만으로 장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현행 전파법상 전파응용설비는 설치 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하고 설치 이후 준공신고, 준공검사를 받아야 한다. 5세대(5G) 이동통신 기지국 등 무선국이 준공신고 직후 사용 가능하고 사후에 준공검사를 받는 것에 비해 규제가 엄격했다.
반도체 업계는 개정(안)이 생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률안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RF 장비는 반도체 미세 회로 모양을 깎아내는 식각(에칭), 웨이퍼 위에 얇은 막을 쌓는 증착 공정 등에 쓰이는 핵심 장비다. 해당 공정을 진행할 때 웨이퍼가 들어가는 챔버 속이 '플라즈마' 상태가 돼야하는데, 이 상태를 만들기 위해 고도의 RF 장비 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설치된 RF 장비는 7만~8만여대로, 장비 가격은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을 호가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연평균 이설 및 교체 추정 대수는 1만2000여대 수준이다. 기존 법령 체계에서는 장비 입고 후 최종 가동하기까지 60일에서 90일이 걸린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 소요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특히 적기 생산이 중요한 반도체 시장에서 팹 운영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의 경우, 장비를 입고하면 바로 가동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며 “조속한 시장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 발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는 RF 장비 설치 규제를 완화해도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미 각 회사들이 공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파가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차폐 시설을 충분히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문이 없는 철골 콘크리트, 충분한 차폐 물질로 외관을 갖춰 다른 통신설비에 혼선을 줄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이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공장에서는 고주파 차폐를 고려하고 공장을 만든다”며 “삼성전자 공장 가동으로 인해 통신장애를 겪은 사례가 거의 전무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도 이 같은 배경과 취지에 찬성해 개정(안) 수용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영식 의원은 “다중차폐시설 내 설치된 RF 설비가 다중차폐시설 밖 다른 통신 설비에 혼신을 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점에서 개정안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며 “구체적인 규제 완화 기준은 시행령 등을 통해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