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군사행동보다 대화로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은 허상이 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역을 동시다발로 공격했다. 이미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고, 수도 키예프 함락이 임박했다는 외신이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표면적인 원인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시도, 그에 따른 러시아 안보 위협이라고 한다. 다만 사태 진행 추이를 바라보면서 반도체 전문가로서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과 국력에 직결된 이슈 세 가지를 짚고자 한다.
첫째, 미국 대응이 인상적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침공 즉시 강력한 비난 성명과 함께 대(對)러시아 제재방안을 발표했다. 제재방안 핵심은 반도체 등 첨단 제품과 부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미국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사용하거나 미국산 장비로 생산된 제품의 러시아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첨단 제품 수출 통제가 다른 국가에 대한 강력한 제재 수단이 되는 세상이다. 반도체 등 첨단 제품이 직접적인 군사행동에 버금가는 신무기 이상의 위상을 가진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현대 산업 모든 곳에 쓰이는 반도체야말로 21세기 가장 위협적인 무기가 됐다. 반도체 독립이 곧 국가의 존립이다.
둘째, 한국경제 근간이자 부동의 1위 수출품인 반도체 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우크라이나는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레이저의 필수 원자재인 네온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실제로 2014년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 당시 네온 가격이 600% 급등한 바 있다. 또 다른 필수소재로 센서와 메모리 반도체에 사용되는 팔라듐은 전 세계 수요 35%를 러시아가 공급한다. 이번 사태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복잡성과 취약성이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해외 매체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에 대비해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기업에 반도체 원료 공급망을 다각화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고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번 사태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칠 파급효과를 면밀히 살피고,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타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기술 패권이야말로 국가 안보 핵심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국가였다면, 러시아 침공에 대해 서방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경제 제재가 아니라 군사적 대응을 불사하지 않았을까. 아니 초기부터 적극 대응해 위기의 싹을 자르려 하지 않았을까. 대만이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건재한 이유는 TSMC의 존재 때문이다. TSMC는 매출 60% 이상이 미국 수출에서 나온다. 미국이 반도체를 설계해 주문하면 이를 생산해주는 반도체 동맹이다. TSMC의 독보적 실력 덕분에 대만은 '반도체 방패(semiconductor shield)'를 가진 셈이다. 군사동맹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력한 방패막이 기술동맹이다. 그리고 기술동맹의 일원이 되려면,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지속 유지, 강화해 나가야 한다.
다음 5년을 결정지을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다. 국민은 네거티브 선거가 아니라 정책 선거를 갈망하고 있다. 경제, 산업, 교육과 인재, 기업정책, 국가안보 등 국정 전 분야에 걸쳐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견인하는 대전환 시대를 맞아 반도체를 필두로 한 기술패권 확보가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 중 하나로 부상했다. 반도체 전문가의 일원으로서, 기술패권이 국가 안위와 존립을 결정짓는다는 시대적 이슈를 후보들이 보다 진지하게 다뤄주기를 촉구한다. 한국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돼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양향자 국회의원(광주서구을) bestwest19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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